中 남평은 북한서 수입한 석탄 이동기지
을씨년스럽고 두만강도 잿빛 탁류 흘러
압록강서 배추 씻는 혜산 아낙 애처로워
한반도 상황과 무관, 백두산엔 단풍 절경
대학원생들과 함께 며칠 전부터 북중 국경지대를 답사하고 있다. 동해 쪽 끝머리 두만강 하류 길림성 훈춘시 방천에서부터 서해 쪽 끝머리 압록강 하류 요녕성 단동시까지 국경지대 1천300㎞를 이동하는 여정이다. 한반도 최북단, 두만강과 압록강 국경지대를 동에서 서로 횡단하는 답사이다. 매일 7시간쯤 버스를 타고 주로 북중 간 국경통상구, 즉 국경세관 13곳 중 일부를 답사하는 일정이다. 10월 1일 중국 국가 수립을 기념하는 국경일까지 겹쳐 수많은 중국인들과 뒤엉키면서 힘들게 이동하고 있다. 가을 한복판, 자작나무 노란 단풍으로 물든 산맥을 보면서 갑작스레 휘날리는 눈보라에 놀라는 기쁨이 없었더라면 너무 힘든 여정이었을 것이다.
국경통상구에서 보는 북한과 중국의 가을 풍경이 다채롭다. 함경북도 무산과 마주해 있는 길림성 훈춘시 남평진 남평통상구, 초입부터 심상치 않았다. 중국 군인이 여권을 전부 회수하면서부터 뭔가 있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그 의문은 바로 풀렸다. 남평은 무산탄광에서 실어온 석탄을 쌓아두었다가 기차로, 트럭으로 끊임없이 길림성 공업도시로 실어가는 석탄 이동기지였다. 중국은 남평을 통해 수입해 가는 석탄의 양이 정확하게 알려지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커서 삼엄한 경계병을 세우고 있었다. 남평역에 쌓인 산더미 같은 석탄에 대한 부담이 중국과 북한에 있었던 것이다. 예전 남평 주변을 지날 때, 통상구에 가 볼 수 없다던 현지인들의 말을 이제야 알게 됐다.
조그만 국경 마을 남평의 가을 풍경은 끊임없이 석탄을 실어나가고 탄광 도시처럼 시커먼 먼지에 싸여 있는 을씨년스러움 그 자체였다. 추위가 느껴질 정도의 가을, 국경 마을에는 중국 군인들만 줄 맞춰 지나가고 있었다. 그곳 두만강은 잿빛으로 탁류되어 흐르고 있었다. 무산 철광과 탄광지대에서 오염된 강물이 중국 펄프공장 앞을 거치면서 완전히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은 아련한 추억일 뿐이다. 그 안타까움 속에 남평을 나오는데 또 중국 군인들이 버스에 올라탔다. 이제는 모두의 손전화기에 찍힌 사진을 일일이 검색했다. 긴장되면서도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지는 시간이었다.
다음은 중국 길림성 장백현과 마주 보고 있는 혜산의 가을 풍경이다. 혜산은 자강도의 도청 소재지다. 장백현을 마주하고 있는 압록강 건너 지척에 있는 국경 도시다. 강남이 혜산이면, 강북은 장백현 시내이다. 중국 쪽에서 야구공을 세게 던지면 닿을 것 같은 압록강 건너편이 혜산이다. 첫 시선은 강변에서 배추를 씻는 아낙의 모습이었다. 상수도 시설이 얼마나 열악하길래 저리도 차가운 강물에 손을 담그고 한참을 일하고 있을까? 애처로움과 안타까움에 한참 자리를 뜨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 페인트칠한 건물이 간간이 눈에 띄는 혜산시의 전경은 예전에 비해 활기차 보였다. 압록강 강변에 새롭게 세워진 대규모 제재소가 북한 경제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눈에 들어오는 새로 건축된 큰 건물들은 깔끔히 페인트칠을 한 채 서 있었다. 중국 쪽 건축물과 별 차이 없어 보였다. 여전히 낡고 오래된 가옥들이 절대다수이고, 압록강 찬물에 배추를 씻는 아낙의 모습이 북한의 본모습이다. 하지만 그 속에 하나씩 보이는 큰 건물들은 북한 경제가 나아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 북중 국경지대의 가을은 단풍이 절정인 채 겨울을 향해 달리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한반도 상황과 무관하게 백두산에는 단풍이 절경이다. 10㎝의 눈이 쌓여 천지에는 오르지도 못했다. 천지만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동행한 대학원생들의 눈망울이 가슴을 후볐다. 함경북도 회령시가 내려다보이는 길림성 훈춘시 삼합에서 벼 베기와 가을걷이에 한창인 북한 주민들을 보았다. 두만강 강변에서 여유롭게 풀을 뜯는 염소들이 국경지대 가을 풍경이다. 간간이 보이는 푸른색 선명한 지붕으로 단장한 북한군 초소를 뒤로하고 오늘도 단동으로 향해 가고 있다. 국경지대 북한 주민들이 배불리 먹고, 따스한 잠자리에 들길 간절히 바라면서….
※김용현 교수: 1967년 전라남도 담양 출생. 동국대 학사·석사·박사 졸업. 한국국제정치학회 북한통일분과위원회 위원장. 북한연구학회 대외협력위원회 이사.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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