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서부시장 특화거리, 밀려나는 주변 상권

입력 2015-10-01 01:00:05

우후죽순 들어선 치킨집 터줏대감들 잇따라 폐업 "소상공인 죽이는 행정"

지난달 29일 대구 서부시장 내
지난달 29일 대구 서부시장 내 '프랜차이즈 특화거리' 치킨가게를 찾은 시민들이 골목을 가득 메우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석 달째 임대료를 못 내고 있어요, 손님이 아예 사라졌습니다."

대구 서구청이 조성한 '서부시장 프랜차이즈 특화거리'(이하 특화거리)가 성공작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 상권에는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주변 상권에 대한 분석 없이 특정 지역에 먹거리 타운을 조성한 탓에 '고객 쏠림 현상'이 나타나면서 주변 식당가에는 손님 발길이 끊어지고 있다.

◆특화거리 인근 상인들은 울상

올 5월 22일 문을 연 서부시장 특화거리는 전국 최초로 외식 프랜차이즈를 전통시장에 접목시킨 민관 협업화 사업으로 이목을 끌었다. 서구청은 가스와 전기, 도로 등 기반 시설을 정비한 것은 물론 건물주와 합의를 통해 싼값의 임대료를 내고 가게를 열 수 있도록 했다. 현재 이곳에는 치킨과 고기, 국수, 짬뽕 등 음식점 23개가 운영 중이다.

하지만 특화거리가 조성된 이후 서부시장 주변 소상공인들의 매출 감소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10년 넘게 서부시장에서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59) 씨는 올 6월부터 아르바이트생을 해고했다. 서부시장 프랜차이즈거리에 8개나 되는 치킨집이 생겨나면서 손님들이 줄어 매출이 반 토막 난 때문이다. 김 씨는 "126㎡(38평)의 가게를 나 혼자서 운영할 정도로 손님이 없다"며 "특화거리는 서부시장을 살리는 사업도 아니고, 주변 소상공인들을 죽이는 잘못된 행정이다"고 하소연했다.

매출이 급감하면서 일부 업소는 일찌감치 폐업했다. 한 상인은 "내가 아는 것만 해도 6개 식당이 문을 닫거나 싼값에 가게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며 "서부시장 인근에서 10여 년간 영업했던 유명한 횟집도 특화거리 때문에 가게를 팔았다"고 말했다.

서구청에 따르면 현재 서부시장이 자리한 비산2, 3동에서 영업 중인 음식점은 170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특화거리의 음식점 23개를 제외한 147개 가게는 대부분이 매출 감소라는 '폭탄'을 맞았다.

가장 피해가 큰 업종은 치킨이다. 10년 넘게 치킨집을 운영한 오모(43) 씨는 "서부시장 인근에 17개의 치킨집이 있는데 특화거리 조성 이후 모두 매출이 줄어들었다"며 "가게 운영이 어려워 업종을 변경하려고 아내가 일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상인 피해 속출 와중에 2단계 확장 사업 추진

상인들은 특화거리를 조성하기 전 주변 상권 분석 등을 해야 했었다며 비판하고 있다. 박모(61) 씨는 "특화거리가 조성된 뒤 구청 직원들이 주변 가게의 매출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는지, 정확한 조사를 했는지 의심스럽다"며 "서부시장 내 상인들도 특화거리 가게가 자신들의 식자재를 구입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특화거리에 대한 지나친 특혜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정모(54) 씨는 "특화거리는 조성 전부터 구청이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며 "공무원들이 앞다퉈 회식을 하는 등 발벗고 나섰지만 지금껏 이들이 다른 인근 가게를 찾아 매출을 올려준 적이 있었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도로변에 자리한 상가들이 탄력주차제 도입을 요구했을 때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가 특화거리가 생겨나자마자 곧바로 적용을 하더라"고 덧붙였다.

여기다 서구청이 특화거리를 확장한 2단계 사업을 구상하면서 인근 상인들 반발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특화거리 인근의 상인들은 조만간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대구시와 구청을 상대로 특화거리 확장을 반대하는 운동을 벌일 예정이다. 한 상인은 "이미 조성한 거리는 어쩔 수 없다지만 2단계 사업만큼은 중지해야 한다"며 "서부시장이나 인근 소상공인들과 상생할 수 있는 사업을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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