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불가능을 가능케 한 천재들의 도시

입력 2015-09-22 01:00:08

1971년생. 경북대 노어노문과 석사(러시아 현대소설).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사범대 박사
1971년생. 경북대 노어노문과 석사(러시아 현대소설).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사범대 박사

모방에서 꽃피운 19세기 러시아 문화

출신 상관없이 재능·천재성 끌어들여

우리가 낳은 빅토르 안의 러시아 귀화

천재조차 범인으로 만든 씁쓸한 현실

지난여름 학생들과 함께 제정 러시아의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러시아인들은 루블화 폭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반대로 가까운 유럽인들에겐 더없이 좋은 기회인지라 온 도시가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하루는 시내를 걷다 거리 사진전의 제목에 눈이 갔다. '승리의 나라, 나라의 승리-불가능도 항상 가능하게 만드는 나라 러시아'라는 다소 선동적인 푸틴의 말을 제목으로 내건 그 전시회는 러시아 스포츠 영웅들의 얼굴 모습을 담고 있었다. 여름 내내 계속된 거리 사진전에는 러시아인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올림픽 영웅들의 모습이 전시돼 있었는데, 그중 한 동양인의 얼굴이 눈에 띄었다. 바로 소치올림픽 3관왕 안현수 선수, 러시아 이름으로는 빅토르 안의 흑백사진이었다. 그 사진 앞에서 한참 서 있자니, 지나가던 러시아인들이 흘낏 쳐다보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안 선수의 사진을 보며 떠오른 생각은 소치올림픽의 몇 가지 아쉬웠던 순간이 아니라, 바로 러시아 문화와 천재들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인류 문화가 점진적으로 발전한다지만, 돌이켜보면 특별한 도약과 발전의 시기는 있게 마련이다. 서양을 중심으로는 기원전 4, 5세기경의 그리스 아테네와 15, 16세기의 이탈리아 피렌체가 그러했다. 수세기에 한 명 나오기도 힘든 천재들이 동시대 같은 곳에 태어나 말 그대로 어깨를 부딪치며 함께 걸어가던 때였으니 말이다. 물론 이는 우연의 산물만은 아니었다. 그리스의 경우 견제와 경쟁을 통해 여러 도시국가들이 이룬 민주주의의 성과가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고전 문화의 전성기를 낳았다. 이탈리아 역시 기독교 중심의 서양문화의 핵심으로 개성 강한 도시들의 경쟁구도 속에서 폭발적인 문화의 발흥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러한 문화 폭발의 시대로 19세기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덧붙여 본다. 그리스나 이탈리아의 경우 꽤 오랫동안의 문화 축적과 인문주의적 사유의 성과였다면 러시아는 전혀 다른 경우였다. 정교와 함께 문자를 도입한 것이 약 천 년 전, 그로부터 이른바 러시아 문화가 발원한 셈이니, 그 문화사도 겨우 천 년 남짓이다. 러시아는 인류사에 공헌한 바도 없고, 역사에 기록될 그럴싸한 인물도 태어나지 않았으며, 서양도 동양도 아닌 덩치만 큰 어정쩡한 나라였다. 이건 러시아 사상가인 차다예프의 말이니 자기네 스스로도 어지간히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누구도 예상치 않았던 이곳에서 문화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푸시킨을 필두로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투르게네프, 체호프 등 천재 작가들은 단숨에 러시아 문학을 세계 문학의 중심으로 이끌었다. 그뿐인가. 글린카, 차이콥스키, 무소르그스키, 스크랴빈, 라흐마니노프 같은 음악가들이 줄지어 등장하여 고전음악의 헤게모니가 유럽에서 러시아로 옮겨진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발전했던 발레가 러시아의 자랑거리가 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그것은 우선 '좋은' 모방의 결과였다. 18세기 초 유럽의 모든 도시들을 '베껴서' 건설했던 것이 상트페테르부르크였고, 더불어 스펀지처럼 흡수했던 수천 년 서구 문화유산이 한 세기 후 그들의 문화로 폭발한 것이다. 다음은 모방을 새로운 창조로 이끌었던 천재들을 품어주는 포용력일 것이다. 남의 문화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듯, 인물 역시 출신에 상관없이 재능과 천재성을 우선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표트르 대제의 뒤를 이어 러시아를 유럽 수준으로 끌어올린 이는 독일 출신 예카테리나 여제였고, 러시아 국민시인 푸시킨은 표트르 대제의 용병이었던 흑인 장군의 외손자였다. 러시아 발레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안무가 프티파는 프랑스인이었다. 외국인일지라도 그들의 재능과 능력은 러시아의 것으로 인정되었고, 천재성은 숭배와 존경의 대상이었다.

안 선수의 사진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은 그가 따낸 세 개의 금메달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어쩌다 우리가 낳은 천재마저 품어주지 못하게 되었는지, 천재조차도 범인(凡人)으로 만드는 요즘 우리의 토양이 씁쓸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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