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 위에 얹은 여유로움 세 끼만 잘 먹어도 즐겁다
#강원도서 세끼 지어먹는 과정 보여줘
#황당 콘셉트에도 10%대 시청률 '대박'
#적당한 웃음'장난기에 '쿡방' 버무려
#금요일 저녁 시간대 시청자 입맛 돋워
지난해 나영석 PD는 '서류상'으론 도무지 말이 안 되는 기획을 하나 꺼내 들었다. 강원도 골짜기에서 출연자 두세 명이 세 끼 밥을 지어먹는 과정을 보여주겠다고 한 것. 특별한 미션이나 설정도 없고 그저 주어진 메뉴에 따라 밥과 반찬을 만들어 먹으면 그만인, 국내 방송 사상 본 적이 없는 황당한 콘셉트였다. 그런데, 이 답 안 나오는 기획이 공전의 히트를 쳤다. 바로 10%대에 달하는 시청률로 비지상파 예능의 성공지수를 바꿔버린 tvN '삼시세끼'다. 11일 방송을 끝으로 마무리된 '삼시세끼' 정선 편. 만재도 편이 남은 상태라 시리즈는 이어진다. 하지만 정선 편이 '삼시세끼'의 시작과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알린 만큼 1년간의 대장정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충분한 의미가 있다. 시작 당시 출연자들까지도 '망했다'며 한탄하던 이 프로그램은 어떻게 히트작이 될 수 있었을까.
◆아무도 예상 못 한 선전, 첫 회부터 인상 강렬
'삼시세끼' 정선 편이 첫선을 보인 건 지난해 10월이다. 앞서 나영석 PD가 CJ E&M으로 이적한 후 '꽃보다 할배'라는 히트작을 내놓은 직후다. '꽃보다 할배'에서 원로 배우들의 유럽 배낭여행기를 보여주며 의외의 성과를 얻은 터라 '나영석 PD라면 이번에도 잘해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커져 있었던 것도 사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제 나영석도 고배를 마실 때가 됐다'는 말이 돌고 있었다. '꽃보다 할배' 성공의 맛에 도취된 나영석 PD가 지나치게 실험적인 기획을 들고 무모한 시도를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이었다.
사실 필자가 보기에도 '삼시세끼'는 쉽게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기획이었다. 한 장소에서 매번 같은 인물들이, 기껏해야 게스트 한두 명 바뀌는 게 전부인 상황에서 밥 지어먹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어떻게 시청자를 즐겁게 만들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역발상으로 얻어낸 성공이라 불렸던 '꽃보다 할배'만 해도 해외여행이란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만들어뒀건만, '삼시세끼'는 도대체 '믿는 구석'이 뭔지 보이지 않았다.한때 나영석 PD의 '1박 2일'과 비교되던 SBS의 히트 예능 프로그램 '패밀리가 떴다'가 떠올랐지만, 이 프로그램 역시 항상 장소를 바꾸고 게스트를 추가하는가 하면 온갖 종류의 설정까지 곁들여 힘겹게 웃음을 자아냈던 터. 자칫하다간 "정선에서의 1년을 보여주겠다"던 나영석 PD의 호언장담과 달리 조기 종영될 수도 있을 듯했다.
하지만 불필요한 우려였다. 지난해 10월 17일, '삼시세끼' 정선 편 첫 방송이 전파를 타던 날. 필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영석 PD의 솜씨에 새삼 감탄했다. 분명 특징 있는 웃음의 요소는 없었고 출연자들이 기를 쓰고 재미를 주려 노력하지도 않았다. 이서진은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데도 "이게 무슨 재미가 있냐. 이 프로그램은 망했다"라고 툴툴거렸고, 동반 출연한 옥택연도 "진짜 이렇게만 해도 방송이 되는 거냐"며 끊임없이 의문을 던졌다. 그런데도 제작진은 메뉴를 지정해 주는 것 외엔 출연자들에게 별다른 방향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 나태한 듯한 설정이 예상치 못한 재미를 줬다. 처음엔 아무것도 없는 정선의 작은 집에서 솥단지 하나 안고 황당해하는 출연자들을 보다 실소가 새어나왔다. 그러다 밥을 짓겠다며 아궁이에 불을 때고 단 하나뿐인 솥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식사 준비하는 분주한 모습에 소리까지 내며 웃게 됐다. 힘들게 만든 한 끼를 먹은 뒤 놀라울 정도로 쌓여버린 설거지감에 한숨 쉬는 순간에 이르자 폭소가 터져나왔다. 굳이 미션을 던지거나 웃음을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출연자들의 자연스러운 움직임 속에서 재미를 찾아냈고 또 편집을 통해 충분히 부각시켰다.
시골 강아지와 염소에게 각각 밍키와 잭슨이라는 이름을, 오래된 자동차에 슈마허G라는 과한 타이틀을 부여한 것 역시 소소한 재미 요소였다. 향후 이 소소한 재미 요소는 한동안 '삼시세끼'의 인기를 견인하는 주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뿐이 아니었다. 여기에 '꽃보다 할배'의 이순재와 박근형 등 의외의 게스트를 투입해 서진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날 첫 회를 보고 난 후에 '삼시세끼'가 '꽃보다 할배'에 이어 나영석 PD의 또 다른 히트작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느리고 또 느리고 느리고, 그래서 신선하고
아무리 출연자들의 재량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은 리얼 버라이어티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그들이 역량을 발휘하고 충분히 뛰어놀 수 있을 만한 '구실'은 제공한다. 이를 위해 꽤나 많은 작가들이 따라붙고 상당수의 조연출도 따라붙는다. 보기에 자연스러워야 하므로 미리 대본을 짜는 일은 없겠지만 출연자들의 동선을 미리 짜보고 제작진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해 머리싸움을 해야 한다. 그리고 혹, 현장에서 충분한 방송 분량이 나오지 않을 상황에 대비해 여러 가지 미션이나 설정을 해두기도 한다. 과거 '패밀리가 떴다'의 경우 이 '설정'이 과해 마치 대본이 준비된 시트콤 같은 느낌을 주는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했다.
반면에 '삼시세끼'는 그저 한 장소에서 큰 움직임 없이 무사히 식사를 마치기까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전부다. 옥수수나 당근 등 먹거리를 직접 재배하고 수확하는 등 몇 가지 미션이 주어지고 게스트가 등장하긴 하지만 그 정도가 전부다. 그 외에는 음식을 준비하며 출연자들끼리 주고받는 대화와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재료를 다듬는 등 매번 비슷한 모습이 반복된다. 음식이 식감을 자극하지만 그렇다고 요즘 유행하는 타 '쿡방'에 비교해 그다지 화려하게 보여주지도 않는다. 심지어 미완성이거나 실패에 가까운 요리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렇듯 특별히 몰입할 만한 포인트가 뚜렷하지 않은데도 이상할 정도로 '삼시세끼'는 재미있다. 시종일관 투덜대는 이서진과 이유도 없이 흥이 넘치는 옥택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그들과 게스트가 나누는 시시한 대화가, 어설픈 솜씨로 만들어낸 음식을 "먹을 만하네"라는 말과 함께 후루룩 먹어치우는 것이, 강아지 밍키가 성장해 새끼를 낳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즐겁다. 21세기 어떤 방송사에서도 시도하지 않은 느려터진 예능인데 이게 참 희한하게도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이렇듯, 별일 하지 않는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여유'가 바로 '삼시세끼' 인기의 주요인이 됐다.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금요일 저녁 TV 속 예능 프로그램에는 여유가 넘친다. 출연자들은 한가하게 "뭐 해먹지"라며 끼니 걱정만 한다. 대충 만든 음식도 맛있게 먹어치우고 밤하늘의 별까지 감상한다. 여기에 적당한 웃음과 장난기를 머금고 최신 트렌드인 '쿡방'까지 선보이니 시청자 입장에선 금상첨화다.
연령대 관계없이 부모와 자식이 함께 앉아 낄낄거리면서 봐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인기 절정의 '무한도전'을 틀어놨을 때와 사뭇 비교되는 분위기다.(대개 아버님들이 한 소리 한다. 당장 채널 돌리라고) 여기에 음식이나 술 한잔을 곁들여도 딱 맞아떨어진다. 피곤한 일주일을 마감하는 금요일 저녁에 최적화된 영리한 예능이다. 기존에 단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던 형식으로 성공을 거뒀다는 점에서 '국내 예능의 틀을 바꾼 프로그램'이라 부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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