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화 칼럼] 중도 사퇴, 차점자 승계

입력 2015-08-31 02:00:00

지역 대표성 고려 않은 선거구 조정

농·산·어촌 여론 대변할 수도 없어

도중 사퇴, 차점자 자동 당선 어떨까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통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지켜낸 헌법재판소 박한철 소장을 만나 핫한 이슈인 선거구 조정에 대해 물었다. "통진당 해산 결정은 명쾌했으나 선거구 조정은 많이 아쉽다. 헌법불합치 결정을 통해 선거구별 인구 편차만 고려했지, 국토균형 발전을 위한 지역 대표성을 살려줄 방안을 빠뜨리지 않았느냐"고 돌직구를 날렸다.

지난해 10월, 헌재는 지난 10년간 유지해온 선거구별 인구 편차를 올해 말까지 3대 1에서 2대 1로 바꾸라고 했다. 19대 국회는 시한만료가 다가오자 발등에 불이 났다. 큰 틀이 바뀔 리는 만무하니 이대로라면 농'어촌 기반의 영'호남은 각 3, 4석씩 줄고, 수도권은 8, 9석 늘어난다.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근거는 지방자치제도이다. 지난 1995년에 도입한 지방자치제도가 20년을 넘겼으니 이제는 지역 대표성보다 투표 가치의 평등성을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잣대를 국회에 들이댔다. 과연 그럴까. 착각이다. 지자체의 허울만 본 것이다.

'현행 유지'라는 소수의견을 낸 재판관 3명(박한철'이정미'서기석)의 우려처럼 지난 70년간 우리나라의 도농 격차는 심화되었고, 인구 차이는 더 벌어졌다. 지방자치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그저 단체장이나 시'도의원을 뽑는 지방탁치(託治)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회가 선거구를 주물럭거려서 내년 총선이 치러지면 돈'예산'정보'일자리가 몰려 있는 수도권 국회의원만 늘어나고, 지방 선량은 줄어들어 '지방 홀대'는 더 심해질 것이다.

우리나라는 미국과는 달리 단원제다. 미국은 지역대표성과 표의 등가성을 위해 상원의원은 주(州)의 크기에 상관없이 주마다 2명씩 똑같이 뽑고, 하원은 인구비례로 뽑는다. 우리 국회도 창의성만 발휘한다면 그렇게 못 할 것도 없다. 먼저 비례대표 숫자를 정한 뒤, 15개 광역시도(제주도'세종시는 별도)에 미국 상원처럼 일정한 지역구 의석(각 10~15석)을 일단 배정하고 나머지 의석을 광역시도별 인구 편차에 따라 배정하면 수도권과 지방 간 의원 분포 격차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정치권이 이런 전폭적인 변화를 감당하기 어렵다면 작은 개혁이라도 성사시켜야 한다.

즉, 이제는 임기 도중 선출직에게 유고가 생기면 불가피한 경우 외에는 다시 세금을 들여서 재'보궐선거를 할 것이 아니라 그전 선거에서 일정 정도 득표하고 큰 결격사유가 없는 차점자를 자동 당선시켜주는 방법을 구사해보면 어떨까. '어부지리를 얻는다'는 소리가 나올법하지만, 그렇게 해야 임기 도중 자발적 사퇴를 막고 장삼이사 단체장'의원들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이 선거판에서 저 선거판'으로 부나방처럼 뛰어드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우리 지역을 살리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한눈팔 새 없이 지방행정과 의정활동에 전념하는 이라면 어떻게 2년뒤에 있을 총선을 기웃거릴 수 있으며, 도중에 맡은 일을 팽개칠 수 있느냐 말이다. 큰 의욕이나 비전이 없는 인물들이라면 누가 하든 비슷한 그림을 그릴 텐데 구태여 세금 쏟아부어 가면서 재'보궐선거를 치를 이유가 없다.

지방선거에서 총선으로 옮겨타려면, 반드시 2년 미리 사퇴하거나 임기를 채우고 나서 2년 뒤에 나가도록 바꾸는 게 작은 정치개혁의 시작이다. 그래야 더 큰 선거판을 넘보려고 임기 중 각종 조직을 만들어 제 선거에 이용하는 폐단을 없앨 수 있고, 관치 선거를 뿌리 뽑을 수 있다. 특정인의 정치적 야욕을 위해 혈세를 두 번 세 번씩 대어줄 이유가 없다. 지방에서 일하든, 국회에서 일하든 지역과 나라를 구하겠다는 생각으로 정성을 다하고 쉼 없이 정진해야 지방 발전, 국가 발전을 이룩할 수 있음을 중용의 '지성불식'(至誠不息)이 가르치지 않는가. 언제나 지성불식으로 최선을 다하는 그것이 바로 정치 개혁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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