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B-2 스텔스 폭격기

입력 2015-08-26 01:00:04

B-2 스텔스 폭격기가 처음 실전에 등장한 것은 1999년 코소보 전쟁 때였다. 독립을 요구하는 알바니아계 민병대가 코소보에서 세르비아군을 습격하자 세르비아는 인종청소에 가까운 보복을 했다. 나토의 경고도 무시했다. 3월 24일 나토는 세르비아와 코소보에 대한 공습을 개시했다. 이때 선봉에 나선 것이 미국의 B-2 폭격기였다.

유령처럼 날아온 B-2 폭격기와 크루즈 미사일은 세르비아의 비행장 5개소, 군사기지 5개소, 무기 공장 2개소, 통신 지휘소, 유류저장소 등을 초토화했다. 6대의 B-2 폭격기가 45차례 출격하며 자국 영토를 제집처럼 드나들었지만 세르비아는 미사일 한 방 쏘아보지 못했다.

2001년 9'11테러로 시작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 선봉에 선 것 역시 B-2였다. 10월 7일 첫 공습에 나선 B-2는 3일간 6차례 알 카에다와 탈레반의 근거지를 공습했다. 폭격을 통해 주요 표적을 제거하고 지상군이 뒷정리하는 식이었다. '하늘의 유령'이라 불리는 B-2를 동원해 기선을 제압한 미국은 '침략군의 무덤'이라던 아프간 전쟁에서 승리했다.

목함지뢰 폭발을 '남의 조작극'이라던 북한이 결국 유감을 표명, 남북 긴장 국면이 일단락됐다. 준전시 상태까지 선포하며 무력시위를 하던 북의 기세도 꺾였다. 오리발을 내밀던 북이 유감을 표명하며 사태를 마무리 지은 이면에는 힘의 논리를 읽을 수 있다. 잠수함을 기동시키고, 공기부양정을 전진 배치한 북한에 대해 한국은 미국의 B-2와 B-52 전략 폭격기, 핵잠수함의 한반도 투입 카드를 흘리며 압박했다. B-2가 한반도 상공에 뜨면 하루 만에 북한 내 주요 미사일 기지를 비롯한 군사시설과 지휘소를 초토화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과거 B-2의 활약상을 보면 이는 빈말 만은 아니다. 한때 세계 4위의 군사력을 자랑한다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역시 B-2로 시작한 미군의 공격을 당해내지 못하고 숨어다녔다. 2011년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린 공습작전 '오딧세이의 새벽'에도 B-2는 맹활약을 했다. 북의 오금이 저릴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는 평화를 지키기 위해 힘이 필요함을 웅변하고 있다. 30대 청년 김정은은 이긴다는 확신이 들었다면 유감 표명이 아닌 전쟁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곱씹어야 할 것은 유감 표명을 이끌어낸 그 힘의 상당 부분이 미국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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