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 외 텅 비었는데…공무원들 이산가족 만들텐가"

입력 2015-08-20 01:00:01

도청 이전 시기가 당초 올가을에서 내년 2월로 연기될 가능성이 커졌다. 도청 이전 신도시 신청사 모습.
도청 이전 시기가 당초 올가을에서 내년 2월로 연기될 가능성이 커졌다. 도청 이전 신도시 신청사 모습.

경북 도청 이전을 올가을에서 내년 2월로 연기하는 안에 대한 검토에 들어간 김관용 도지사. 그는 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일까?

무엇보다 '이상론'보다 '현실론'이 작용한 때문으로 보인다. 건물이 다 지어졌으니 하루빨리 도청을 옮겨야 한다는 당위성으로 인해 연내 이전을 준비해 왔으나 막상 이전 준비에 들어가자 정주 여건 미비 등 감내해야 할 현실적 어려움이 너무 크게 다가온 것이다.

경북도의회는 김 도지사의 도청 이전 연기 제안에 대해 "아직은 공식 제안이라 할 수 없으니 일단 지켜보자"며 반응을 유보, 최종 이전 연기가 이뤄지기까지는 더 많은 기관 간 협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경북도청 이전은 다툼 속에서 이뤄져서는 안 되며 도민 전체 축제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도청이 옮겨가는 경북 북부권에서도 커지는 중이다.

◆연기 검토, 왜 하나?

김 도지사는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는 6급 이하 공무원들의 '근로 조건'에 대해 최근 깊이 고민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들어가 살 집도 없고' '공무원 자녀들이 다닐 학교가 하나도 없는' 현실 속에서 무작정 공무원들을 도청 신청사로 내몰 수는 없다는 것.

'도청 이전을 또다시 연기한다'는 비난을 듣더라도 도청을 움직이는 구성원들에게 큰 희생을 요구하기가 힘들다는 생각을 김 도지사가 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초 김 도지사의 민선 6기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김 도지사가 도청 이전 시기를 '10월 준비, 11월 마무리'로 확정 발표한 뒤 도청 및 교육청 공무원노동조합은 들끓기 시작했다.

우선 공무원들은 도청 신도시에 '살 집'이 없는 상황에서 대구와 신도청을 오가는 장거리 통근을 가장 우려했다. 경북도교육청과 도청 직원 등 1천500여 명이 매일 통근을 하는 상황이 오게 된다는 것. 이 경우, 출퇴근 버스로 리무진버스 40대 이상, 일반 버스도 30대 이상이 필요하다고 공무원노조는 주장했다.

공무원 자녀들이 다닐 학교가 전무하다는 점도 이전 연기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였다. 이달 현재 도청 신도시에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가 한 곳도 없으며 모두 내년 봄 개교한다.

이 때문에 공무원노조는 "내년 봄에는 공무원 임대아파트 입주가 가능하고 일부 학교도 개교하는 만큼 내년 2월 이후로 도청 이전 시기를 늦춰달라"고 주장해왔다. 이렇게 되면 대구와 도청 신도시를 오가는 통근자 수도 현재 예측치보다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어 예산 낭비도 막을 수 있다는 것.

경북도청 공무원노조 도영호 위원장은 "도청 이전 자체만으로도 현재 도청 및 교육청 공무원들은 엄청난 불이익을 안고 간다. 그런 상황에서 이전을 정주 여건이 조성된 후에 하자는 요청을 했다. 우리의 요청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연내 이전할 경우, 큰 불상사가 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도청 이전 신도시, 실제 모습은?

경북도청 신청사는 이미 지난 4월 말 준공, 준공검사까지 끝났다. 도청 신청사를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상하수도'송전선로'배전선로 등 기반시설도 마무리 단계로 수도와 가스 등은 이미 쓸 수 있다. 도청 및 도의회 청사를 가동, 공무원들이 안에서 업무를 볼 수 있는 준비는 다 된 것이다.

하지만 글자 그대로 도청'도의회'도교육청 건물만 덩그러니 서 있다. 퇴근해서 들어갈 아파트가 현재는 없다.

644가구 규모 공무원 임대아파트는 연말이 되어야 가까스로 공사가 끝나 입주가 가능하고 민간이 짓는 분양 아파트 중 가장 공사 진도가 빠른 현대 아이파크(489가구) 역시 올해 말은 되어야 공사가 마무리된다.

내년 3월 이후에 공사가 마무리되는 우방 아이유쉘 1, 2단지, 내년 여름에야 공사가 모두 끝나는 우방 아이유쉘 센텀'아이유쉘 센트럴 등 현재 아파트 건축 일정을 보면 신도청으로 가는 도청 직원들은 한참 동안 '집 없는 나그네 설움'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 공무원들의 한목소리다.

학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6학급 132명이 들어갈 수 있는 유치원은 내년 3월, 32학급 1천120명이 등교할 수 있는 초등학교 역시 내년 3월, 32학급 1천120명이 공부할 수 있는 중학교도 내년 3월이 되어야 개교가 가능한 상태로 현재 공사 중이다. 올가을에 도청이 이전하면 상당수 공무원들이 학교 때문에 자녀들을 대구에 둬야 하는 이산가족이 될 형편이다.

경북도청 한 관계자는 "신도청 건물만 빨리 만들어지고 다른 정주 여건은 도청 건물 공사 진척도에 비해 훨씬 늦어진 것이 사실"이라며 "국비 확보 등 예산 편성 과정에서 불균형이 발생하다 보니 빚어진 현상"이라고 털어놨다.

◆연기로 가나?

도청 이전 연기가 실제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도의회의 동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장대진 경북도의회 의장은 "이전 결정 과정에서 도민들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며 "김 도지사가 어떤 형식으로든 도민들에게 직접 이전 연기에 대한 설명을 할 것이므로 그 상황을 지켜본 뒤 도의회의 결정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홍진규 경북도의회 운영위원장은 "19일 김 도지사의 의장 방문은 도청 이전 연기를 공식 제안한 것으로 볼 수 없으며 공식 기자회견 등 도청 이전 연기와 관련된 공적인 의사 표명이 있으면 그때 가서 의원총회를 소집, 의회의 공식 입장을 내놓겠다"고 했다.

한편 도청 이전을 두고 갈등과 반목은 안 된다는 도청 신도시 주변 지역 기관'단체장들의 목소리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현준 예천군수는 "몇 년을 기다렸는데 몇 개월 때문에 얼굴을 붉혀서야 되겠는가"라며 "연내에 이전되면 좋겠지만 정주 여건 부족 등으로 큰 고통을 겪어야 하는 공무원들의 고충도 고려해야 한다. 도지사의 판단을 보자"고 했다.

김휘동 전 안동시장은 "도지사 입장에서는 직원들의 출퇴근과 거주 문제 등 사실상 '초대형 사건'을 다루는 것이다. 특정 이전 시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잘 합의해서 도청 이전을 축제판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안동의 한 정치권 인사는 "새 건물을 짓고, 새 도로를 닦다 보면 조금씩 늦어지기도 하고 예상보다 빨리 가기도 한다. 도청'도의회 입장에서 도민들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부담을 갖겠지만 몇 달 빨리 가는 문제 때문에 서로 손가락질하는 사태는 안동'예천 사람은 물론 도민 누구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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