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죽도 못 먹던 시절 그저 한 끼 배불리 먹을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산업화를 거치며 먹을 게 없어 주린 배를 움켜쥐는 경우가 사라지면서 끼니를 때우기보다는 한 끼를 먹더라도 맛있게 먹는 쪽으로 선호가 바뀌었다. 2015년 현재 또다시 음식문화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뿐만 아니라, 여기에 더해 '보기 좋은 떡'을 찾는다. 이러한 변화에 걸맞은 곳이 있다. 바로 '고메 아카데미'. 우리는 레스토랑에서 종종 '고메'라는 단어를 접한다. 프랑스어 고메(gourmet)는 원래 미식가, 조예가 깊은 사람을 뜻하지만, 일상적으로 미식(美食, 좋은 음식)이란 의미로 사용한다. 이번 주 '이 맛에 단골'은 맛있는 음식을 넘어서 아름다운 차림(美飾)을 좇아 고메 아카데미의 문지방을 넘는 식도락가들과 함께 고메 아카데미를 찾았다.
◆나만을 위한 고메
고메 아카데미는 아무나, 아무 때고 찾아갈 수 있는 식당이 아니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까닭이다. 예약 방식도 까다롭다면 까다롭다. 식사할 날 5일 전에는 예약해야 고메 아카데미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더욱이 식사 인원이 최소 8명은 되어야 한다. 이 조건을 다 갖추더라도 먼저 예약한 손님이 있다면 원하는 날 예약할 수도 없다. "밥 한 끼 먹는데 뭐가 이렇게 까다로우냐"며 이러한 운영 방식에 짜증을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덕분에 고메 아카데미만의 장점이 생겨난다. 바로 나만을 위한 공간.
그 이유를 송미경(51) 씨가 설명했다. 송 씨는 "제아무리 값비싼 레스토랑을 가더라도 다른 테이블에 손님이 있다. 그리고 그 테이블 손님의 본의가 아니더라도 그들에게 방해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고메는 하루 한 팀의 손님만 받기 때문에 온전히 '우리만의 공간'이 생긴다"고 말했다.
'나만을 위한 고메'는 공간만이 아니다. 음식도 나만을 위해 준비된다. 고메 아카데미를 처음 방문하는 이라면 당황할 법한 게 있다. 고메 아카데미에는 메뉴가 없다. 대신 모든 음식은 맞춤형으로 준비된다. 예약하는 이가 한식, 양식 중에 고르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모임 성격에 따라 연령대에 따라 파티플래너인 유지희 고메 아카데미 원장이 상차림과 장식을 달리 준비한다.
김성미(49) 씨는 "고메의 음식은 나만을 위해 준비된 음식이라서 다른 손님이 먹고 남은 음식을 재사용하는 찝찝함도 없다"고 했다.
유 원장은 "사실 고메는 쿠킹 클래스로 처음 시작했는데 회원들과 지인들의 요구로 음식을 대접하기 시작했다"며 "고메의 음식은 한식이면 한식, 양식이면 양식에 맞춰서 쿠킹 클래스의 각 요리 선생님들이 직접 준비한다"고 말했다.
◆감성으로 먹는 음식
고메 아카데미의 단골들은 이곳의 음식을 입으로 먹는 게 아니라 눈으로, 감성으로 먹는다고 말한다.
13일 오후 7시 30분쯤 취재를 위해 방문한 고메 아카데미는 상차림이 한창이었다. 벽 한편을 가득 메운 클래시컬한 찻잔, 꽃, 화덕 등 첫눈에 들어오는 고메 아카데미의 모습은 여느 양식 레스토랑에 견줘도 손색없었다. 유 원장은 "고메가 10년 전 처음 문을 열었을 때 꽃꽂이, 요리, 파티, 차 등 관심을 두고 배웠던 문화적 토양을 바탕으로 '나만의 놀이 공간'을 꾸미고 이를 공유한다는 생각으로 공간을 채웠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이날 차림상은 발효 조리법을 바탕으로 한 약선 퓨전 한식. 테이블에는 전복 내장 비빔밥, 전복 미역국, 전복조림, 어린싹 채소 샐러드, 된장에 유자청을 곁들인 양념으로 간을 한 돼지수육 등 8가지 음식이 놓였다. 비빔밥 등 음식이 담긴 식기는 스테이크, 파스타와도 잘 어우러질 듯했다. 만일 테이블에 초만 있었다면 얼핏 보기에 양식당에서 상차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할 법했다.
김병수(43) 씨는 "견문이 그리 넓진 않지만, 개인적으로 고메의 세팅이 대한민국 최고라 생각한다"고 치켜세웠다. 이는 김 씨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다. 음식 관련 다큐멘터리 촬영차 고메 아카데미를 방문했다가 단골이 되었다는 남우선(48) 대구 MBC PD는 "양식은 논외로 하고, 고메의 한식을 보면 '한식의 또 다른 접근'이란 생각이 든다. 한식의 특징과 색깔은 살리되 세팅은 서양의 문법을 따르고 있다. 젊은 세대가 반길 만하다. 게다가 음식은 가벼우면서도 지킬 것은 지킨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사진 박노익 선임기자 noik@msnet.co.kr
▶식사 1인 5만원(1만원 추가 시 티 파티 제공)
▷영업시간=예약제
▷규모=30석
▷주소 및 문의=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899-1 효성빌딩 2층, 053)741-0872.
◆'이맛에 단골!' 코너는 독자 여러분의 참여로 이뤄집니다. 친목단체, 동창회, 직장, 가족 등 어떤 모임도 좋습니다. 단골집을 추천해주시면 취재진이 소정의 절차를 거쳐 지면에 소개해 드립니다.
▷문의 매일신문사 특집부 053)251-1582~4,
이메일 weekl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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