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국고보조금 '통째로 해먹어도' 몰라…심의 체계는 어디 있었나?

입력 2015-08-18 01:00:00

부정수급 드러나면 건물 회수…보조사업 참여 영구금지 방안도 검토

툭하면 불거져 나오는 농업보조금 부정 수급 사건으로 인해 농업보조금 등 보조금 부정 수급 전반에 대한 제재가 크게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경북도 내에서 이뤄진 모내기 및 벼 수확 모습. 사진은 기사의 특정사실과 관계가 없음. 매일신문 DB
툭하면 불거져 나오는 농업보조금 부정 수급 사건으로 인해 농업보조금 등 보조금 부정 수급 전반에 대한 제재가 크게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경북도 내에서 이뤄진 모내기 및 벼 수확 모습. 사진은 기사의 특정사실과 관계가 없음. 매일신문 DB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최근 수년간 농업 국고보조금 부정수급 문제는 끊임없이 불거졌다.

보조금 일부를 빼먹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통째로 해먹을' 의도를 갖고 허위 서류를 만들어 보조금을 가로챈 농업인들도 검찰과 경찰에 잇따라 적발됐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보조금 사업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로 했다. 과연 '정말 필요한 곳에' '제대로 일하려는 농업인'에게 보조금이 돌아갈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보조금, 빼먹어도 모른다

경상북도의 농업인 A(55) 씨는 애호박 가공 및 저온저장고를 설치한다며 허위 서류를 행정기관에 내고 국고보조금 1억800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지난 6월 경찰에 구속됐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총 사업비 1억5천500만원 가운데 자부담금 4천700만원을 부담한 것처럼 허위 전표를 작성했다. 시설업자에게 자부담금을 지급한 것처럼 허위 입출금 전표를 만든 뒤 행정기관에 낸 것이다.

A씨는 처음부터 애호박 가공사업을 할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A씨는 빼돌린 돈으로 사업계획서에도 없는 개인사무실을 불법으로 증축하고, 개인 용도의 창고 건물까지 만들었지만 돈을 준 군청은 알 도리가 없었다. 허위 서류를 내도 검증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경북의 한 훈증제 공급업체 대표 B(36) 씨는 군청이 농작물 연작피해를 줄이기 위해 실시한 '토양훈증제 지원사업' 과정에서 5억3천여만원의 국고보조금을 가로챈 혐의로 지난해 말 검찰에 구속됐다. 토양훈증제 공급업체는 영농법인과 짜고 허위 증빙서류를 만들어 훈증제를 공급한 것처럼 하고 돈을 빼돌렸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 관계자들은 혀를 찼다. B씨는 토양훈증제가 필요없는 감자 재배 농민들까지 끌어들여 보조금을 빼돌렸지만 아무런 검증도 이뤄지지 않고 돈이 줄줄 새나갔던 것이다.

◆10년 된 기계가 새 기계로 둔갑

경북의 한 영농법인 대표 C(45) 씨는 딸기 급랭시설인 터널프라자를 설치하면서 군으로부터 국고보조금 2억5천만원을 받은 뒤 1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해 말 검찰에 구속됐다. C씨는 사업 당시부터 딸기 급속냉동기 구입비가 턱없이 모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무리하게 추진했다.

당시 딸기 급속냉동기 가격은 8억원가량이었는데, 영농법인은 국고보조금 2억5천만원과 자부담 2억5천만원 등 5억원밖에 없었다.

가진 돈만으로는 딸기 급속냉동기를 구입할 수 없었기에 C씨는 중고 기계 판매업자들과 짜고 새 기계보다 훨씬 싸다는 점을 노려 2001년에 만든 중고 딸기 급속냉동기를 2011년에 만든 것으로 둔갑시켜 기계를 구입했다. 보조금을 빼돌린 것은 물론, 판매업체로부터 기계 구매 후 2천500여만원을 되돌려받는 수법까지 썼다.

오래된 기계를 새 기계로 둔갑시키는 일 이외에도 '권장소비자가격'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농기계를 구입해 놓고 권장소비자가격을 내세워 보조금을 받아가는 수법도 최근 적발됐다.

대구지검 특수부는 지난 5월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농기계 구입 보조금을 가로챈 경북의 농업인과 농기계 판매업자 등 3명을 구속기소하고 18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지난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보조금을 받은 40개 작목반 가운데 19개 작목반이 농기계 판매업자 등과 짜고 총 보조금 54억7천만원의 20%가량인 10억9천만원을 부정수급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권장소비자가격으로 신고하면 보조금이 지급되고 농기계 판매업자도 할인판매를 해준다는 점을 서로 이용해 보조금을 빼돌렸다. 할인된 금액만큼 뒤로 챙긴 것.

이 과정에서 일부 농업인은 지자체가 정한 보조금 지원조건인 농지면적 5㏊ 이상에 미달되자 다른 사람 명의를 도용해 가짜 작목반을 만들기도 했다.

◆왜 이런 일이?

행정기관이 민간에 주는 보조금의 불투명성은 오래전부터 지적돼왔다. 하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국고보조금은 먼저 본 사람이 임자'라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국고보조금이 제대로 운영'관리되지 않은 데는 영농법인 및 농업인, 농업단체들의 삐뚤어진 사고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한 지자체의 묵인 및 태만도 빼놓을 수 없다.

보조사업 운영'관리, 부정수급 분석 및 대책 마련을 총괄할 컨트롤타워가 없고, 보조금 정보 공개 및 부정수급 신고체계가 미비했던 것이다.

그동안 국고보조금을 받은 뒤 부정수급으로 수사를 받은 영농법인 및 영농인, 단체들을 분석해보면 보조사업이 충분한 '타당성 및 중복성 검토' 없이 선정'집행됐으며, 보조금 전달체계의 핵심인 '보조사업자 감시'감독' 장치도 충분히 작동되지 않았다.

경북도 한 관계자는 "보조금 항목이 너무 많고 액수도 수천억원이나 돼 몇 명 안 되는 공무원이 그 많은 서류를 검증하고 현장에 나가 실태를 파악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고쳐질 수 있을까

최근 중앙정부가 나서 보조금 부정수급에 대해 '철퇴'를 내리겠다고 나선 가운데 국고보조금의 부정수급을 막기 위해서는 보조금심의위원회를 설치하고, 각 사회단체 및 농업인단체들의 보조금 지급에 대한 심의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지난해 5월 지방재정법이 개정되면서 지방보조금 예산의 편성, 보조사업의 수행 및 관리, 성과평가 등에 관한 기준이 법제화된 만큼 제대로 된 법 집행만 한다면 보조금 누수를 막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김경호 성주군 농정과장은 "지난해부터 1억원 이상 되는 국고보조금 사업은 보조금 지급단체의 건물에 대해 근저당 설정을 한 뒤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보조금을 부정수급한 것이 드러날 경우 건물을 회수하는 방안을 실시하고 있다"면서 "국고보조금을 횡령하거나 당초 사업 목적 외에 돈을 집행하는 영농법인 및 농업인들에 대해 보조사업 참여를 영구금지하는 초강수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은근 고령군농업기술센터 소장은 "국고보조금의 부정수급 사례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 자부담금을 제대로 부담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고령군은 국고보조금을 받을 영농법인 및 농업인, 단체들의 자부담금 입금 통장이 확인되지 않을 경우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며 "올 초에 국고보조금 3천만원 이상은 군에서, 3천만원 이하는 읍'면사무소에서 일제 전수조사를 한 뒤 전산처리를 하는 등 철저한 관리에 나서고 있다"고 했다. 정욱진 기자 penchok@msnet.co.kr 성주 고령 전병용 기자 yong12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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