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면 인파를 피해 늦지만 여유롭게 휴가를 떠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하지만 올여름은 준비하는 공연이 있어 휴가를 반납해야 했습니다. 여간해서는 표를 내지 않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심야영화를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쾌적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에는 우리처럼 방학을 맞아 가족단위로 늦은 밤 관람을 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주로 아이가 좋아하는 히어로물을 보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그 시끄러운 영화를 보려고 앉으면 영화 시작 후 10분 내에 늘 잠이 들어버리고, 엔딩 자막이 올라갈 때 깨어나 어벙벙하게 함께 돌아오는 게 다반사입니다.
다행히 우리가 찾은 날에는 히어로물은 상영하지 않았고 상영시간이나 관람등급을 고려해볼 때 영화 '암살'이 아이와 함께 보기에 가장 적합해 표를 끊고 팝콘을 사들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별다른 생각 없이 자리에 앉았지만, 졸지 않고 집중해 보았고 그만큼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는 영화의 배경이 된 암울했던 시기에 대해 질문을 해왔지만, 부끄럽게도 저는 초등학생 아들만큼 그 시대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1천만 관객을 넘겼다는 기쁜 소식을 접했습니다. 정말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보다 조국을 위해서 목숨을 던지는 인물들이 허상이 아닌 실존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와 달리 침략시기 일제의 수하로 살다 독립 후 건국의 혼란을 틈타 또 다른 권력으로 이동하여 오히려 당당한 지배층이 되어가는 인물 또한 실존인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슬픔과 분노를 느낀 사람이 최소한 1천만 명은 된다는 것이지요.
광복 70년을 맞아 일본 총리의 담화 내용에 촉각을 세웁니다. '과거에 대한 진정한 반성도 사죄도 없었다. 행간 사이의 담긴 저의가 의심스럽다. 변명으로 일관되었다' 등등 그의 담화에 관한 말이 많습니다. 다 맞는 말입니다. 사죄도 받고 잘못을 인정하게끔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우선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잘못 꿰어진 단추를 풀어 다시 맞추듯 지금이라도 올바른 역사의식으로 잘못된 과오를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왜 우리는 우리 내부의 잘못에 대해서는 이토록 관대할까요? 잘못된 과거에 대한 반성과 책임 없이 과연 일본에게 반성하라고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며칠 후 아들에게 올바르게 쓰여진 근현대사 역사책을 사주려고 서점을 찾았습니다. 서점에는 영화의 흥행 덕분인지 근대역사 코너가 아예 따로 마련돼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책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이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고 책을 사서 돌아오는 길에 영화 '암살' 포스터를 만났습니다. 극 중 한 인물이 "어이 3천불, 우리 잊으면 안 돼!"라고 했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고맙습니다"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극단 시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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