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수원 본사 이전, 경주시 발전 디딤돌

입력 2015-08-04 01:00:01

경주는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문화도시이다. 산 사람의 집과 죽은 사람의 집(무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신라 천년을 지배했던 어느 왕의 고분 옆에는 평범한 우리 이웃이 살고 있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모습이다. 삶과 죽음이 별개가 아닌, 또 다른 세상의 시작으로 생각했던 신라인의 가치관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과거 찬란했던 역사의 유산은 오늘날 우리네 삶의 터전이고, 그 신라인의 숨결이 아직도 우리 곁에서 생동하고 있다. 지금 천년고도 경주는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본사 이전으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한수원은 전체 소비전력의 약 30%를 생산하는 대한민국 대표 에너지 공기업이다. 국민 10명 중 3명은 원자력과 수력으로 만든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 한수원은 50조원의 자산규모로 지난해 매출 9조5천억원, 당기순이익 1조4천억원을 달성한 알짜배기 공기업이다. 올 연말 한수원의 컨트롤타워인 본사가 경주로 이전한다. 경주시는 2005년 11월 주민투표 89.5%라는 높은 찬성률로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을 유치했다. 정부는 한수원 본사 경주 이전, 특별지원금 3천억원 지급, 3조5천억원 규모의 일반지원사업 등을 약속했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한수원 이전이 이제 5개월가량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눈길을 본사 이전 후로 돌려보자. 경주시는 고대하던 한수원 본사를 품었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한수원이 오면 정말 지역이 발전할까. 시민들의 삶이 본사 이전 후로 과연 나아질까 등등. 미래 일을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몇 가지 지표를 통해 본사 이전 후를 상상해보자. 경주는 인구 27만 명의 중소도시이다. 고령인구 비율이 17.6%로 초고령 사회의 문턱에 와 있다. 반면 학생수와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도시는 점점 늙고,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그런데 내년이면 이러한 흐름이 역전될 것이다. 최소 2천~3천 명의 한수원 가족이 일시에 유입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인구만 느는 것이 아니다. 3천 명은 경주 도심권 인구 13만 명의 2.3%에 불과하지만 젊고 구매력 높은 소비층이 다수이기에 지역경제 파급 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스갯소리로 시내 승용차 10대 중 1대는 한수원 가족 차량일 수도 있다. 인구 유입, 소비 증가, 고용 창출의 선순환 구조가 이어진다면 지역경기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수원 본사 이전이 지자체 살림살이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올해 경주시 재정자립도는 19.7%, 재정자주율은 56.3%이다. 전체수입이 100원이라면 자체수입은 20원이고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돈은 50원가량 된다는 의미이다. 이마저도 동종 지자체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월성원전을 포함해 한수원이 납부할 지방세는 올해 약 600억원으로 예상된다. 지역자원시설세가 ㎾h당 0.5원에서 1원으로 대폭 인상되었고, 작년도 순이익 증가에 따른 지방법인세 납부가 늘었기 때문이다. 향후 본사 이전이 완료되면 지방소득세, 재산세 등 세금납부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 돈이 모두 지방재정의 밑천으로 사용되니 한수원도 지역발전에 톡톡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적어도 재정만큼은 경주시를 부러워하는 지자체가 있을지 모르겠다.

본사 이전은 경주시가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가교역할을 할 것이다. 이번 기회가 지역사회에 작은 파장을 일으킬 조약돌이 될지, 아니면 새로운 도약의 디딤돌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지역주민, 지자체의 의지와 행동에 따라 미래가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한수원은 전기를 만드는 발전(發電) 전문회사이다. 본사 이전이 성공적으로 추진되어 한수원이 지역을 발전(發展)시키는 회사라 불렸으면 한다. 그리고 삶과 죽음,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듯, 경주시민과 한수원 직원이 서로의 이웃, 하나의 공동체가 될 날을 손꼽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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