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화난 맹신자의 사회

입력 2015-07-28 01:00:00

남편이 아내를 타박하면 아내는 아이를 나무라고, 화가 난 아이가 개를 걷어차면 개는 애꿎은 닭을 몰아붙인다. 이른바 '화풀이의 전염성'이다. 미국의 진화생물학자인 데이비드 바래시와 정신과 의사인 그의 부인 주디스 이브 립턴은 '화풀이 본능'이란 저서에서 인간의 화풀이 방식을 보복과 복수 그리고 화풀이로 나눈다.

보복은 벌을 건드렸을 때 쏘는 것과 같이 하등동물에서도 보이는 즉각적인 반응이고, 시간을 두고 이루어지는 복수는 영장류 등 주로 고등동물에게서 나타나는 일이라고 한다. 문제는 화풀이다. 화풀이의 대상은 당사자가 아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풀이는 확대되고 왜곡되는 특성을 지닌다. 특히 인간의 화풀이는 용의주도하고 광범위하며 잔혹하다.

화풀이가 이념으로 무장하고 이를 맹신하는 대중이 영합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회혁명이나 종교운동을 명분으로 강력하게 표출될 수도 있다. 대중의 일사불란한 행동과 자기희생까지 결부되는 이 운동성은 문명화된 20세기의 유럽에 전체주의의 광풍을 불러왔던 나치즘이나 파시즘의 파괴성으로 나타났고, 고도로 발달된 지식정보화 사회에서는 종교적인 극단주의로도 건재한다. 사회주의 3대 세습체제인 오늘의 북한사회가 그렇고,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IS가 그렇다.

이 같은 사회현상을 유발하는 심리적인 요인을 애써 규명한 학자도 있다. 독일계 미국 사회철학자 에릭 호퍼는 '맹신자들'이라는 저서에서 '맹신에 빠진 대중은 공동체는 물론 자기파괴도 서슴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자기가 편승한 이념과 운동에 과감히 뛰어든 '맹신자'의 심리적 기저에는 자기 자신과 현실을 혐오하는 경향이 농후하다고 꼬집었다.

호퍼는 격동기의 대중운동일수록 맹신자가 위세를 떨치기 마련이고, 그들은 한마디로 좌절한 사람을 말한다고 규정한다. 자신의 인생이 실패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허무감과 자기혐오에 사로잡혀 어디론가 탈출하려는 욕구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특정 집단이나 조직에 소속되려는 성향과 자기희생으로 표출된다는 설명이다.

좌절한 사람들에게 대중운동은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중요한 도피처가 되며, 열등감이 클수록 행동은 광적인 경향을 드러낸다. 중요한 것은 맹신자들은 정작 자신의 병적인 심리는 외면하면서 이웃의 일에 간섭하고 세상사를 농단하려 든다는 것이다. 수신제가(修身齊家)도 안된 얼치기가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를 하겠다는 과대망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극히 혼란스럽다. 너 때문에 모두가 화가 나있고, 나와 내가 속한 무리만 옳다는 맹신에 빠져 있다. 그러니 큰 사건이 터지거나 이슈가 생길 때마다 사회 대중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휩쓸리고 들끓는다. 정치인과 지식인은 물론 언론까지 합세해 찧고 까불며 법석을 떨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잊어버리길 반복한다. 사분오열된 대중의 맹신주의 경향은 다른 공동체에 대한 극심한 배타성을 드러내며, 정당'지역'종교'계층 간 갈등의 골을 깊게 한다.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문명 세계의 모델로 자부하던 서유럽이 히틀러라는 전대미문의 독재자를 등장시킨 배경을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명제에 담았다. 개인적인 자유를 누리게 된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그 자유로부터 도피하려는 경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애써 얻은 자유가 오히려 부담스러웠거나 군중 속의 고립감을 이기지 못한 데 따른 심리적 귀결이라는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얻은 자유를 주체하지 못해서, 개인은 화가 나있고 대중은 지쳐 있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그러잖아도 유난히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세상이다. 눈만 뜨면 함량 미달의 갑론을박만 일삼는 정치문화 속에 민심이 중구난방으로 흩어진 오늘 대한민국 사회. 사회심리학적인 건강검진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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