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스파이웨어로 메신저 감청
민간인 사찰 없었다지만 의문 남아
언제부터 국가정보기관의 업무가
개인의 사생활 감시가 되었는지…
작년 10월 국내 최대 메신저인 다음 카카오톡 대화 내용의 사찰과 감청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꽤 많은 사람들이 해외에 서버를 둔 메신저로 옮겨가는 이른 바 '사이버 망명'을 감행했다. 가장 많이 옮겨간 곳은 독일에 근거를 둔 텔레그램으로, 채팅 내용이 암호화되어 해킹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당시 나도 이 '망명'의 물결에 동참했는데, 해당 메신저 주소록을 열어보니 지인들 상당수가 이미 사이버난민이 되어 있었던 기억이다. 물론 몇 달 지나지 않아 대다수가 익숙한 국내 메신저로 다시 돌아왔지만 말이다.
처음에 텔레그램에 흥미를 가졌던 이유는 그 창립자인 러시아인 파벨 두로프의 독특한 이력 때문이었다. 1984년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파벨은 유명한 언어학자의 아들로, 영문학과 번역을 전공했으며 라틴어를 포함한 7개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고 알려져 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러시아 최고의 소셜 네트워크 '브 콘탁테'(V Kontakte)를 형 니콜라이와 함께 창립한 파벨은 인문학적 사유와 과학적 두뇌가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이 청년이 특히 유명세를 탄 것은 천재적 두뇌와 잘생긴 외모뿐만 아니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러시아 정보기관과의 힘겨루기 때문이었다. 텔레그램을 창안한 계기가 정보기관이 자신과 형을 감시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였다고 파벨은 말한 바 있다. 기관원들이 찾아온 날 형에게 메시지를 보낸 파벨은 그 어떤 메신저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통감하면서 해킹이 불가능한 메신저를 고안하게 된 것이다. 그는 형과 자신이 텔레그램을 통해 나눈 비밀대화 내용을 해킹하는 사람에게 거액의 상금을 내 걸 만큼 보안에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러시아의 자랑이라고 할 만한 이 청년은 지금 독일에 살면서 전 세계를 떠돌고 있다. 작년 크림반도 사태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가 악화되었을 때, 러시아국가안전부(FSB)는 친 우크라이나 성향 인물들의 개인정보를 파벨에게 요구했다. 그는 여기에 응하지 않고 소셜 네트워크 홈페이지를 통해 이 사실을 만천하에 공개한 후 독일로 떠나버렸다. 러시아의 저커버그라 불리면서 미래가 창창한 이 청년은 다시는 조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노라고 공공연히 선언하고 있다.
파벨의 예가 아니더라도 러시아는 공산체제였던 소련시절부터 사찰이나 검열로 워낙 악명이 높았다. 지난 세기, 노벨상을 받은 작가 솔제니친은 지인에게 보낸 사적인 편지에서 스탈린을 비판한 것이 발각되어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8년 형을 살게 된다. 혹한의 강제노동 수용소에서 보낸 하루를 유머러스하게 그린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라는 소설은 이때의 체험에서 나온 것이다. 스탈린의 공포 정치가 횡행하던 20세기 중반은 개인이 보내는 전보와 편지 한 장까지 모두 검열되던 시대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21세기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것도 더 조직적이고 치밀한 방법으로 말이다.
최근 우리나라 국정원이 이탈리아의 해킹 소프트웨어를 사들인 것이 알려지고, 관련 직원이 자살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해당 소프트웨어는 개인이 사용하는 모든 인터넷이나 통신관련 자료를 감청할 수 있는 스파이웨어라고 한다. 자살한 직원이 삭제한 파일에 민간인 사찰 기록은 없었다는 국정원 자체 조사결과가 발표됐지만 많은 이가 안 믿는 눈치다. 언제부터 국가정보기관의 업무가 국가의 안위나 이익을 위한 거시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사생활 감시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 사건 이후 사이버망명 붐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읽고 오랜만에 텔레그램에 접속해보니 최근 접속한 사람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늘어 있었다. 그리고 서버 측에서 보낸 메시지 하나! 7월 초 동아시아에서 집중된 디도스 공격으로 서비스 장애가 일어난 점을 사과하면서, 그 배후 세력으로 동아시아 국가기관 또는 경쟁사를 지목한 것이었다. 이 또한 우연의 일치였을까?
윤영순/경북대 교수·노어노문학과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