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촌놈이라 해도 좋다

입력 2015-07-24 01:00:00

나이를 먹는 것일까? 최근 들어 자꾸 고향에 가고 싶다. '고향'은 참으로 묘한 것이다. 사실 나는 내 고향 성주에서 태어나 딱 15년만 그곳에서 살았고 그 배가 훨씬 넘는 시간을 여태껏 대구에서 살고 있다. 고향에는 집도 절도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이다. 나는 긴 인생사에서 짧은 고향에서의 삶을 평생 우려먹고 있다.

어느 날 정년퇴직하고 고향에 살고 있는 선배 시인을 방문하게 되었다. 초록의 싱그러운 향기에 이끌려 떠나는 고향 길에 울퉁불퉁한 옛길은 간데없고 잘 닦아놓은 포장된 도로를 쌩쌩 달렸다. 낙동강을 가로지르며 새로 놓인 다리 위를 지날 때는 공중에 매달린 듯 어질어질하기도 했다. 저 멀리 학수네가 보살로 간 '대흥사' 절이 소나무 숲에 싸여 보일 듯 말 듯하고 하얗게 물결을 이루는 비닐하우스는 노란 참외를 익히고 있었다. 덜컹대며 가던 소달구지 대신 까만 승용차가 스르르 미끄러져 골목으로 들어가고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는 만개한 능소화만이 담을 덮고 있었다.

끝없이 달리고 싶은 마음을 제어하기 위해 읍내의 성밖숲에서 잠시 쉬어 갈 때, 왕버들은 그늘을 만들며 여름을 달구고 희미하게 들리는 눈쟁이, 개구리, 풀벌레들이 부스럭대는 소리가 한낮의 고요를 깨기도 했다.

코끝이 찡하다. 돌을 깨는 포클레인이 들어와 앞산의 문필봉을 부술 때, 고향이 사라졌다고 생각하고는 한 번도 찾지 않은 시골길이었다.

시인의 집에는 노랗게 핀 쑥갓 꽃이 내 키만 하게 올라가 있었고 주인이 다 뜯어 먹은 상추는 대궁만 남아 장대같이 밭에 꽂혀 있다. 우리는 산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개울을 따라 걸으면서 옛날이야기에 정신이 없었다.

선배 시인은 촌놈이라고 무시하고 깔보던 시대에 기죽지 않고 살아남아 그래도 교장선생님까지 했으니 성공한 삶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흙을 밟고 푸른 들판을 뛰어다니며 자란 탓에 야생마 같은 강인함을 지니고 있어 지금도 두려울 게 없단다. 도회지에 나와서도 가장 먼저 흙 때를 벗기고 사람과 더불어 한데 어울려 잘 굴러 갔으며 제일 세련되고 도회적이기도 했다. 누구를 촌놈이라 부른단 말인가? 거짓 없는 순수한 자연과 동화되어 자랐기 때문에 그는 저 자신도 자연의 일부라고 했다. 선배 시인은 스스로 '촌놈'이라며 촌놈은 본 바 있고 먼저 사람이 되며, 무엇보다 어른을 알고 가슴이 살아있어 사람의 향기가 난다고 했다.

나도 가끔 쓸데없는 고집을 피울 때가 있다. 상대방의 고향이 시골이라고 하면 속으로는 벌써 마음에서 몇 점을 더 주고 있다.

노랗게 참외가 익어가는 고향에 다녀오면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버티고 있는 것 같다. 도회지가 고향인 친구는 '고향이란 자주 가 볼 수 없는 먼 데라서 꿈에나 가보는 곳'이라며 놀렸다. 고향은 그저 멀어서 그리운 것이 아니다. 촌놈이라 해도 좋다. 고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문 차 숙/시인·대구경북발전포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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