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오모니'의 나라, 조선

입력 2015-07-22 05:00:00

박 승 주
박 승 주

며칠 전 일본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올해 9월 초에 대구에 갈 예정인데 며칠간 신세를 좀 질 수 있겠냐며 연락이 왔다. 이 일본인 지인과는 현재 일제강점기 시절 대구에서 태어나고 자란 모리사키 가즈에(森崎和江'1927~ )라는 작가의 작품을 공동으로 번역하고 있다. 몇 년 전 대구읽기모임을 통해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된 이 친구는 대구의 도시재생 사례를 연구테마로 삼고 있는 사회학자이기 때문에, 1년에 한두 번은 꼭 대구를 찾는다. 대구라는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 보니 연구 자료를 수집하다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하면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는데, 이번에 공동 번역을 하고 있는 모리사키는 작가도 이 친구가 소개해 줬다.

1927년 대구부 삼립정(지금의 삼덕동)에서 태어난 모리사키는 아버지가 조선인 학교의 교사였기 때문에 성장기의 대부분을 대구와 경주에서 보냈다. 해방 후 일본으로 귀환하고 나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양국의 역사와 조선에 대한 공부를 해 나가는 과정에서 식민지 2세로서의 자기의 정체성을 새삼 자각하게 된 그녀는 88세가 된 지금까지도 조선에 대한 그리움과 죄의식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현재 번역하고 있는 '경주는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나의 본고향'(1984)이라는 소설은 조선에서 지낸 17년을 그린 자전적인 내용으로, 당시 대구와 경주의 자연풍경과 그곳에서의 생활을 회상하는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모리사키는 어린 시절 자신이 살았던 조선을 따스한 어머니의 품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소설에서의 표기도 한국어의 일본식 발음 그대로 '오모니'라고 표현하며 절절한 그리움과 함께 죄스러움을 그려내고 있다. 지금까지 식민지 시절의 대구 풍경은 사진이나 그림엽서를 통해 종종 접했지만, 소설을 통해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당시의 일상 풍경은 또 다른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소설에는 버스 안에서 처음 만난 조선인 아주머니가 귀엽다고 주인공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동전을 쥐여 주는 장면, 집에서 일하던 조선인 언니가 주인공을 등에 업고 동네 구경을 시켜주거나 군고구마를 사주는 장면 등이 나온다. 이런 모습은 정 많은 한국인의 평범한 일상이지만, 작가는 이런 조선 사람들의 정을 '오모니'의 마음이라 여기며 조선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다. 해방 후, 조선에서 보낸 자신의 평화로운 일상이 조선인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자각한 뒤로는 그 그리움의 감정을 차마 표현하기조차 죄스러워하다 이런 소설까지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전히 일본과 한국의 중간인 현해탄에 살고 있다고 말하는 그녀는 지금도 그리운 고향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있고 싶어서 여행을 가도 한국에 가까운 쪽으로 방을 잡고 머리도 한국 쪽으로 두고 잠을 잔다고 한다. 식민지 시절의 일상 풍경과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일본으로 돌아간 뒤에 겪었던 애환, 번민, 고뇌 등은 지금까지 우리가 별로 접해보지 못한 이야기일 것이다. 지면상 모든 얘기를 다 소개할 수는 없으므로 이 소설의 번역판이 출간되면 독자 여러분도 일독해 보기를 권한다.

박승주/대구하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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