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년간 쌓은 만리장성, '경제 논리'에 무너지다…『5천년 돈의 전쟁』

입력 2015-07-18 05:00:00

5천년 돈의 전쟁/보인 지음/ 허유영 옮김/ 팡세 펴냄

역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는 사람마다 시각에 따라 다르다. 계급으로 분석하기도 하고, 음모와 암투로 분석하기도 하며, 희극적으로도 비극적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칼 마르크스는 경제가 역사를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역사가 커다란 집이라면 경제는 그 기반인 셈이다.

옛날 동전을 보면 겉은 둥글고 안에 네모난 구멍이 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관념이 반영된 것이다. 이 작은 동전 안에 중국의 역사가 응축되어 있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시대별 왕조의 경계를 부수고 역사 속 왕후장상, 충신, 간신들 위에 쌓인 역사의 먼지를 훌훌 털어버리고 역사의 뒤편에 숨어 있는 경제적인 배경을 들여다보면서 경제학 관점에서 중국 역사를 새롭게 해석한다.

중원을 지키기 위해 쌓은 만리장성을 무너뜨린 것은 막강한 군사력이 아니라 '경제'였다. 진나라 때 축조되기 시작한 만리장성은 한나라 때에 이르러 더욱 확장되어 총 길이 2만 리가 넘었다. 하지만 한나라 이후에는 거의 버려지다시피 했다가 1천600~1천700년이 지나서 명나라 때 다시 축조되었다. 그런데 엄청난 오랜 세월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다시 축조한 만리장성은 이전의 것과 거의 일치한다. 왜, 그럴까? 1천700년 전에 축조한 만리장성이나 새로 쌓은 것이나 중국 북부의 연평균 강수량 400㎜ 등강수량선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400㎜ 등강수량선은 농작물 재배가 가능한 지역과 가축 방목에 적합한 지역을 구분하여 농경민족과 유목민족을 가르는 일종의 분계선이다. 흔히 생각하듯 만리장성이 군사적 방위 목적으로만 쌓은 것이 아니었다.

몽골의 알탄 칸은 명나라 황제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몽골족이 남하해 중원을 약탈하는 것은 초원에서 구할 수 없는 비단, 면, 차 등을 얻기 위함이오. 그런데 만리장성을 뚫고 내려가 약탈해도 그런 것들이 원하는 만큼 많지 않으니 하는 수 없이 사람과 가축들을 끌고 가는 것이오. 그런데 사람이나 가축은 초원에도 많소. 게다가 약탈이 아무리 순조롭다 해도 우리 병사의 희생을 막을 수가 없소. 그러니 양측이 평화롭게 상호무역을 하는 것이 좋을 듯하오. 그러면 양쪽에게 모두 이로울 것이오."

알탄 칸은 명나라 황제에게 국경무역을 제안한 것이다. 중농억상의 관념에 빠진 중원사람들 마음속에 있던 커다란 장벽, 바로 '체면'이 문제였다. 이민족 오랑캐 상인들과 거래를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고, 조정 내 유생들은 반발했다. 중원과 북방 유목민족 사이에 무역협정은 1570년에야 가까스로 이뤄졌다. 북쪽 국경에는 평화가 오랫동안 지속됐고, 당시 명나라 군비의 70%가 절감됐다, 산시 지역의 진상이 대규모 무역을 통해 세력을 넓혀갔다. 이렇게 만리장성은 사실상 무너져 내렸다.

수양제의 대운하도 비록 왕조를 망하게 했지만, 중국이 통일국가를 이룩하는 핵심을 제공했다. 중국은 서쪽이 높고 동쪽은 낮은 서고동저의 지형적 특색을 갖고 있다. 기후대는 위도를 따라 분포하기 때문에 위도에 따라 생산물의 종류가 달라진다. 남북으로 흐르는 강이 있다면 각기 다른 위도에서 생산된 상품의 이동이 용이하겠지만, 동서로 흐르는 강은 육로 운송에 방해가 될 뿐이다. 진시황에 이어 수양제가 남북을 관통하는 대운하를 건설한 이유이다. 대운하는 남부와 북부의 경제를 하나로 연결시켰을 뿐만 아니라 남부와 북부 사람들을 서로 이어 통일국가를 이루는 토대가 되었다.

이 밖에도 '소금 밀수꾼들이 당나라를 멸망시키다'와 지폐 때문에 멸망한 송'금'원나라, 은 때문에 영문도 모른 채 망한 명나라, '정화의 대항해가 수행한 두 가지 비밀임무' 등 중국 역사 이면에서 펼쳐지는 '돈'의 위력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저자 보인은 베이징대학 석사반을 졸업하고, 현재 잡지사 '대과기'(大科技)의 부편집장 겸 경제칼럼 주필로 재직하며 인문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298쪽, 1만5천원.

석민 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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