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대마필사<大馬必死>

입력 2015-07-17 05:00:00

3차 구제금융(개인, 기업, 국가 등이 부도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민간 및 공공 자금을 지원해 구제하는 것)을 앞둔 그리스 사태를 지켜보면서 문득 18년 전 대한민국이 떠올랐다. 1997년 11월 21일, 국가 부도 위기에 직면한 대한민국 정부도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었다. 지금은 까마득한 옛날의 기억처럼 되어버린 'IMF 외환 위기'의 시작이었다.

2001년 8월까지 이어진 외환 위기의 여파로 이른바 '대마불사'(大馬不死)의 믿음이 산산조각났다. 바둑에서 '큰 집은 결국 살길이 생겨 쉽게 죽지 않는다'는 이 용어는 '큰 기업은 좀처럼 망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우리 일상에서는 더 자주 쓰인다.

당시 국내 대기업들은 '외형 성장 제일주의'에 빠져 문어발식 확장과 몸집 불리기를 거듭했고, 한순간에 부실화돼 문을 닫아야 했다. 대우, 기아, 해태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 줄줄이 쓰러졌고, 대구경북에서는 우방, 청구, 보성 등 굴지의 건설회사가 삽시간에 무너졌다. 곳간이 바닥난 정부와 부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은행은 이들 대기업에 구원의 손길을 건네지 않았다.

대마불사의 어리석은 믿음은 국내 대학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국내 대학은 IMF 위기에도 승승장구하며 입학 정원 늘리기 경쟁에 급급했다. 대학교육연구소가 2014년 기준으로 입학 정원이 가장 많은 상위 20개 대학을 분석한 결과 이 가운데 13개 대학이 서울'인천'경기권 사립대로 나타났다. 서울의 일부 대형 사립대는 2000년대 이후 동일법인 산하 전문대의 흡수'통합 등을 통해 꾸준히 정원을 늘렸다.

대구경북 대학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번 분석에서 2014년 기준 입학 정원이 가장 많은 비수도권 대학은 계명대(4천970명)였다. 영남대(4천912명), 대구대(4천533명) 역시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문제는 이들 대학이 교육 여건 개선 노력보다는 정원 늘리기에만 치중했다는 점이다. 이들 대학의 교수 1인당 학생 수는 대구대 39.9명, 계명대 31.7명, 영남대 30.1명 등으로 OECD 기준(15명)을 훨씬 웃돌고 있다.

대마불사의 어리석은 믿음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대구경북 대학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다. 2013년 기준 63만 명의 국내 고교 졸업자는 10년 후 2023년에는 40만 명까지 줄어든다. 여기에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70%)을 적용하면 2023년 실제 대학 진학 인구는 현재 대학 입학 정원(56만 명)의 절반에 불과한 28만 명까지 급감한다. 단순한 수치상으로는 앞으로 10년 후 지금의 절반에 해당하는 대학이 사라질 수 있다.

MOOC(온라인 공개수업) 등 급변하는 대학 교육 환경은 국내 대학이 '규모의 경쟁'에서 벗어나야 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왜 대학은 사라지는가'의 저자 이현청 한양대 석좌교수는 '보이지 않는 교육'(Invisible Education)의 시대를 예고하면서 MIT와 하버드가 도입한 MOOC를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MOOC는 대규모 수강자(Massive)가 제한 없는 공간에서 별도의 강의료 없이(open) 인터넷(online)으로 제공받는 교육과정(course)을 말한다. 이현청 교수는 세계 고등교육 인구 1억3천만 명의 절반에 가까운 5천만 명 정도가 이런 보이지 않는 교육으로 이동할 것이라 전망했다.

안타까운 현실은 대구경북 대학이 이런 시대에 소극적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급변하는 대학 교육 환경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교육부 대학 구조조정 정책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닐 뿐 대학 구성원 간 소통과 화합을 통한 구조개혁 노력은 찾기 어렵다. 당장의 등록금 수입에 연연해 정원 감축에 소홀하고, 학과 통폐합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만 거듭하고 있다. 이래서야 '대마필사'(大馬必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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