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틀면 '슈퍼대디', TV 밖 아빠는 괴롭다

입력 2015-07-17 05:00:00

아이 보고 요리까지 혼자 척척, "우리도…" 가족 기대감 높은데 늦은 퇴근·휴일 출근 녹다운

아빠 요리교실에서 요리를 배우는 아빠들의 모습. 달서구청 제공
아빠 요리교실에서 요리를 배우는 아빠들의 모습. 달서구청 제공

'왜, 우리 아빠는 요리 안 해주지?'

두 살배기 쌍둥이를 키우는 이재현(34) 씨는 즐겨보던 아빠 육아 예능 프로그램을 최근 보지 않는다. 아내와 함께 쌍둥이를 먹이고 재우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TV 내용이 아빠 혼자 쌍둥이를 데리고 여행까지 가는 등 현실과는 괴리감이 크기 때문이다. TV에 나오는 아이들은 항상 좋은 곳에 가고 맛있는 걸 먹는데 아이들에게 그만큼 해주지 못하는 미안함도 있어서다. 이 씨는 "쌍둥이를 보느라 시달리는 아내를 위해 TV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해주고 싶지만 주말에도 출근할 때가 많아 불가능하다. 육아 예능을 보면 아내나 아이들에게도 잘 못하는 것 같아 언제부턴가 보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남성이 주체가 돼 육아나 요리를 하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아빠들이 늘고 있다. 완벽한 아빠인 '슈퍼대디'의 모습이 TV 프로그램에 계속 비치면서 가족의 기대가 그만큼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실제 요즘 들어 채널마다 TV 속 남성들은 아이를 돌보거나 요리를 하고 있다. 그들은 아이 셋을 혼자 거뜬히 보거나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나올 만한 요리를 손쉽게 만들어내는 등 완벽하게 가정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현실의 아빠들은 회사에서 퇴근해 잠깐 자녀와 놀아주는 것조차 힘들다. 여성가족부가 14일 발표한 초등학생 이하 자녀를 가진 직장인 부모 1천 명을 대상으로 한 '가족사랑 위시리스트' 조사 결과에 따르면 퇴근 후 자녀와 함께하는 활동을 '주 3회 이상' 실천하고 있는 부모는 20.3%에 불과했고 '전혀 하지 못한다'는 응답도 13.6%나 됐다. 아이와 놀아주지 못하는 이유로 아빠는 '퇴근이 늦어서'(65.2%), '업무에 지쳐 피곤해서'(58.5%)라고 답했다. 응답자 중 61.8%는 정시퇴근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슈퍼대디'가 되려고 노력하는 아빠들도 있다.

쉬는 날 아내 대신 아이를 돌봐주거나 요리를 배우려는 아빠들이 느는 것이다. 달서구청이 2013년부터 운영하는 '아빠 요리교실'에는 매년 신청자들이 몰리고 있다. 달서구청 관계자는 "올해 4, 5월에 진행된 수업에는 지난해보다 1.5배 많은 지원자가 몰려 요리에 대한 아빠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슈퍼맘'을 요구하던 현상과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유가효 계명대 가족복지지원사업단 단장(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TV 속의 슈퍼대디의 모습을 동경하는 것은 슈퍼맘과 마찬가지로 과도기적 현상이라 볼 수 있다"고 했다.

김봄이 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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