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슬퍼런 일제의 죄목 10가지 토해낸 '조선의 義士' 여채룡
임진왜란 때 가산을 헐어 의병을 조직했던 감호 여대로(呂大老'1552~1619)의 애국정신은 김천 성산 여씨 문중에 면면히 이어져 왔다. 임란 후 300여 년이 지나 일본 제국주의의 망령이 조선을 휩쓸자 성산 여씨 문중은 이번에도 분연히 일어서 나라가 위태로울 때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친다는 견위수명(見危授命)의 정신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조선의 백이숙제 여채룡
일제에 항거한 김천 성산 여씨 문중의 대표적인 인물은 이은(二隱) 여채룡(呂彩龍'1866~1936)이다. 여채룡은 1896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나자 왕산(旺山) 허위(許蔿'1854~1908), 일재(一齋) 여영조(呂永祚'1862~1917) 등과 의병을 일으켜 구성(龜城)'희곡(希谷)에서 전투를 전개했으나 적에게 패했다고 한다.
이후 을사늑약과 경술국치를 겪은 후에는 일제에 항거할 뜻을 담은 '독한정'(獨韓亭)이란 당호(堂號)를 대청마루에 내걸기도 했다. 그는 1910년 고종 임금의 승하 소식이 전해지자 김천 구성면 금평리 송림산에 여막을 짓고 3년간 매일 북쪽을 바라보며 곡을 해 임금과 나라에 대한 충정을 보였다.
1921년 56세가 되던 해 여채룡은 일본의 죄목 10가지를 나열한 '일왕 10죄론'(日王十罪論)을 짓고 "일본이 저지른 죄는 지하의 귀신도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니, 더는 불의를 저지르지 마라. 돌아가지 않으면 다시 거병해 주륙하겠다"는 내용의 설유문서(說諭文書)를 총독에게 보냈다.
또 1923년에는 "오적을 없애고 합심해 일본놈을 토멸하자"는 격문과 "임진년에는 이 강토를 짓밟더니 이번에는 보호라는 핑계로 나라를 강탈하니 원수를 갚기 전에는 상복을 벗을 수 없다"는 내용의 '애국가'(哀國歌)를 썼다.
더불어 "일본 놈을 격멸할 때는 왔다. 공력 합심하여 일어서자"는 내용의 창의통고문(倡義通告文) 등을 작성해 평양 등 12곳의 향교를 통해 유림에 보냈다가 1924년 2월 상주경찰서에 발각돼 체포됐다.
여채룡은 포고문 사건으로 인해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청에서 재판을 받을 때 재판장에게 "나는 대한 신민으로, 어찌 너희의 금수 같은 왕을 섬기겠는가. 너희 왕의 죄는 천고에 없는 무도한 죄다. 만 번 죽어도 아까울 게 없다. 우리나라를 내어놓지 않으면 내가 죽기 전에 반드시 전 유림과 함께 거병해 내 나라를 찾을 것이다"라고 하는 등 조선 혼의 기백을 당당히 내세워 법정이 숙연해졌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여채룡은 소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10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른 뒤 풀려났다. 그러나 1928년부터 일제 치하의 납세를 거부하며, 빼앗긴 땅에서 나오는 곡물마저 먹지 않겠다며 홀로 송림산에 들어가 움막을 짓고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근근이 목숨을 이었다.
여채룡은 산속에서 '일편조선'(一片朝鮮)이란 글자를 바위에 새기고 '채미가'(采薇歌) 등 우국(憂國) 시를 지어 울분을 토했다. 이와 함께 매일 아침 대궐이 있는 북쪽을 향해 크게 통곡하며 국권 회복을 하늘에 빌다가 9년 만인 1936년 7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여채룡이 산속에서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국권 회복을 빌다가 영양실조로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국 유림에서는 그를 조선의 백이숙제(伯夷叔齊)라 칭송했다. 유림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조선(朝鮮)의 의사(義士)'로 높여 불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됐다. 김천 구성면 금평리 앞 도로변에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상해임시정부 국내요원으로 활동한 여환옥
김천 성산 여씨 집안의 또 다른 우국지사는 여환옥(呂煥玉'1896~1963)을 들 수 있다. 여환옥은 1896년 성산 여씨 여승동(呂承東'1869~1891)과 풍산 류씨 사이에서 큰아들로 태어났다.
집안 대대로 이어온 부를 물려받은 여환옥은 1920년대 김천의 해산물 및 농산물 등의 위탁 판매를 하던 김천흥업사의 감사직을 맡는 등 남부럽지 않은 풍족한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일제의 국권병탄이 본격화하자 여환옥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자 역사의 격랑 속으로 뛰어든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교육 구국운동이었다. 당시 일제의 압박이 심해지자 전국적으로 교육을 통해 나라를 구하자는 교육 구국운동이 일어났다. 누란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걱정하던 여환옥도 자신의 본가에 광명강습소(光明講習所)를 개설해 지역 청소년들에게 신교육을 받게 하며 애국정신을 고취하는 데 힘을 쏟았다.
교육 구국운동에 매진하던 여환옥은 일제의 강압으로 국권을 상실하는 을사늑약이 벌어지자 좀 더 적극적인 독립운동이 필요함을 느끼고 상해임시정부와의 연계를 통한 독립운동에 나선다. 그는 구미의 오상학원(五尙學園) 설립자인 김동석(金東碩'1903~1966) 등과 함께 군자금 7천여원을 모금해 상해임시정부에 전달했다. 또 1927년부터 7년여에 걸쳐 자신의 가옥과 토지 등을 동양척식회사에 담보로 제공하고 대출을 받는 등 8만6천여원을 모금해 독립자금으로 임시정부에 송금하는 등 상해임시정부 국내 요원으로 활동했다.
교육 구국운동에도 손을 놓지 않았다. 여환옥은 1926년 금릉 청년회가 주도해 만든 교육기관인 금릉학원(金陵學園)이 재정난에 빠지자 금릉학원 유지회(有志會)에 가담해 이사로 활동했다. 그리고 1927년 3월 김천의 고등보통학교 설립을 위한 발기인준비회 상무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32년에는 김천고등보통학교에 1천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1927년 사회주의 세력 내부의 통합이 추진되면서 서상일(徐相日'1887~1962) 등과 함께 신간회 경북지회를 결성하고 부지부장을 맡았으며 김천지회를 설립했다. 6월 18일 신간회 김천지회 총회에서 여환옥은 지회장에 선출됐다. 설립 과정에서 여환옥은 경비를 부담하고, 당시 옥중에 있던 김준연(金俊淵)'여운형(呂運亨) 등 애국지사들에 대한 지원 활동도 펼쳤다.
여환옥은 해방 직후인 1945년 8월 18일 결성된 건국준비위원회 김천지방지부의 위원으로 임명됐으며 1950년 3월 정부의 농지 개혁 과정에서 농지 이전에 대한 조정 역할을 담당하는 농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김천 신현일 기자 hyunil@msnet.co.kr
공동기획 김천시
김천시사
김천 종가문화의 전승과 현장(민속원)
디지털김천문화대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송기동 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여옥달 성산 여씨 김산 중파 감호공 12세손
◇성산 여씨 문중의 건축물
▶성산 여씨 화회댁(星山呂氏 河回宅)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88호로 지정된 성산 여씨 하회댁은 독립운동가 여환옥(呂煥玉'1896~1963)의 생가다.
성산 여씨 문중에서는 15세손 여명주(呂命周'1681~?)에 의해 18세기 초, 3년에 걸쳐 1천700여 평의 부지에 60칸 규모로 세워졌다고 전해 온다. 당시 안주인이 안동 하회(河回)마을에서 시집왔기에 당호를 하회댁(河回宅)이라고 불렀다.
1870년 농민항쟁과 1936년 수해로 인해 대부분이 소실되고, 지금은 ㄷ자형의 정침(正寢'거처하는 곳이 아니라 주로 일을 보는 곳으로 쓰는 몸채의 방)과 사당, 대문채만 남아있다. 정침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6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상방과 안방을 배치했다.
상방의 전면으로 작은방, 부엌, 고방, 사랑방, 누마루(다락처럼 한 층 높게 만든 마루, 건물 바닥을 지면으로부터 높이 띄워 지면의 습기를 피하고 통풍이 잘 되도록 한 누각 형식의 마루)가 이어져 있다.
▶광암정(廣巖亭)
김천 구성면 금평리 광수마을에 위치한 광암정은 광암(廣巖) 여석보(呂錫輔'1824~1889)를 추앙하기 위해 후손들이 평소 여석보가 즐겨 찾던 곳에 건립한 정자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광암정은 평면 구성이 특이하다. 좌측에는 통간(通間'집안의 간(間)이 서로 통(通)하여 하나로 된 것) 우물마루(짧은 널을 가로로, 긴 널을 세로로 놓아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짠 마루, 귀틀마루라고도 함. 사계절이 뚜렷해 습도와 온도 변화가 심한 우리나라 기후에 알맞은 마루 형태)를 깔았고 어간(御間'절의 법당이나 큰방의 한복판)의 정면에 반 칸 규모의 툇간(退間'집채의 원간살 밖에 기둥을 세워 붙여 만든 간살)을 두고 뒤편으로 1칸 반 규모의 온돌방을 마련했다.
우측 전면 1칸은 우물마루를 깔고 후면 1칸에는 온돌방을 두었다. 광암정 정면에는 담장 밖에 연못을 파 운치를 더했다.
김천 신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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