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1번지 경북] <6>귀농인-지역민의 융화, 상주 지장마을

입력 2015-07-09 05:00:00

40대 귀동 부부가 오던 날, 포도만 짓던 농촌마을이 변했어요

지장마을 1급 청정계곡에서 물놀이하는 도시 체험민들. 고도현 기자
지장마을 1급 청정계곡에서 물놀이하는 도시 체험민들. 고도현 기자
이달 말 수확기를 앞두고 명품 모동포도를 손질하는 박환순 지장마을 사무장.
이달 말 수확기를 앞두고 명품 모동포도를 손질하는 박환순 지장마을 사무장.

경상북도가 귀농 1번지로의 자리를 계속해서 지키고 있는 이유는 귀농인과 지역민 간의 융화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경북도의 노력이 결실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도는 그동안 귀농인-지역민 융화 분위기 조성을 통한 상생하는 농촌 공동체 만들기에 주력했다. '귀농인-지역민 융화프로그램' 개설'운영을 지원했고, '지역민-귀농인 생산 우수 농특산물 직거래장터'를 개장하는 등 귀농인들이 빨리 지역 사회에 녹아들 수 있게끔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멘토링(멘티-멘토) 시스템 체계' 구축을 통해 선배 귀농인의 노하우를 적극 활용, 농촌 후계인력 육성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귀농인이 살려낸 산골 공동체 상주 지장마을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도 좋지만 귀농해서 자연과 친구가 되고, 가족과 함께 수확의 즐거움을 공유하는 것도 행복합니다. 귀농 전부터 희망하던 삶들이 지금 피어나는 것 같아 성취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2011년 포도마을로 유명한 상주시 모동면 지장마을로 귀농한 최윤성'박환순(47) 씨 부부는 자칭 '어리한 농부'다. 대구녹색소비자연대가 주관한 생태귀농학교 1기 수강생인 박 씨는 "나와 가족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귀농이 가장 적합할 것 같다는 판단으로 선택했지만, 주변에서 무모한 것 아니냐는 물음에 그저 소박하면서 행복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어리한 농부'라는 농장의 이름도 더 정감 있어 보인다.

남편 최 씨는 포도농사를 짓고 있고 아내 박 씨는 체험마을 사무장을 맡아 도시민 체험과 주민 공동체 생활을 이끌고 있다.

대구에서 공동체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왔다는 이들 부부는 상주로 귀농한 후 고민해 왔던 문제를 하나씩 실현해 나가고 있다.

상주 지장마을은 20여 년 전부터 전체 30가구 모두가 포도를 재배하고 있는 마을이다. 외부인이 이 마을에 들어온 것은 박 씨 부부가 처음이다. 이후 40대 귀농 부부 2가구가 이들을 뒤따르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박 씨 부부를 따라 시래기 재배 등 마을의 공동사업을 만들면서 여러 의미를 찾고 있다고 했다. 공동재배를 통해 무엇보다 마을에 대한 애착이 생겨났다. 아름다운 자연을 많은 사람과 나눴으면 하는 바람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부녀회에서 요가모임도 만들고, 마을에서 같이 영화도 보고, 마을기업의 이익금으로 해외여행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지장마을은 지난 2007년에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선정됐지만, 당시에는 농촌관광에 대해서 제대로 된 준비와 체계가 잡혀 있지 않았다. 그래서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그러다가 2010년 체험마을 퇴출심사 대상에 올랐다.

하지만 박 씨 부부가 귀농을 하고 체험마을 사무장을 맡고서 위기를 넘기게 됐다.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이 마을 공동체 활동을 한다는 건 몹시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나 이곳은 모든 주민들이 포도농사를 짓고 있는데 소득이 높고, 농사일이 너무나 많아서 무언가를 같이 작업한다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마을에서는 포도일 외에 공동작업을 할 수 있는 작물로 시래기와 곶감을 선택해 냉동창고와 건조장을 새로 건립했다. 이것을 매개로 해서 마을 특산품인 포도와 복숭아 곶감 등을 연계해서 도시민들에게 판매를 시작했다.

호응이 좋아 도시민들이 체험마을을 찾아 숙박도 하고 특산품을 사기 시작했다. 박 씨는 "오염되지 않은 자연과 마을의 삶들이 전달되고 이를 통해서 도시민들이 다시 찾아오게 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했다.

박 씨 부부는 초보 귀농인들에게 자신들의 경험을 통한 당부의 말을 전했다. "귀농을 하는 것은 집성촌에 시집을 가는 것과 같다고 생각됩니다. 시댁에서 사랑받으려면 자기를 끊임없이 낮추고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시댁 사람들이 가진 문화, 생활, 습관 등에 대해 알려고 노력하고 그것의 가치를 찾아 나가야만 내가 어울릴 수 있습니다. 그동안 내가 도시에서 배운 것이 모두 허상이라고 느낄 만큼 여기서 배운 것이 많습니다. 생각이나 마음이 모두 건강한 농부가족이 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특산품 개발과 농촌체험 1번지 꿈꾸는 상주 지장마을

지장마을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곳도 아니고 시설이나 볼거리가 잘 갖춰진 곳은 아니지만 체험했던 도시민들은 진짜 제대로의 시골을 느낄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이곳은 30가구 주민들이 산에서 내려오는 샘물을 식수로 쓰고 있을 만큼 청정지역이다.

고랭지 기후여서 포도나 복숭아, 곶감 모두 당도가 높고 특히 포도는 당도 15브릭스를 넘는 등 전국에서도 최고 포도로 정평이 나 있다.

주민들은 영농조합법인을 세우고 이곳에 있는 자연과 특화된 자원(곶감, 포도, 시래기)을 가지고 마을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지장마을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즐기려면 박 사무장이 제공하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들을 경험하면 더 좋다. 어리바리한 농부의 귀농 이야기를 들으면서 잡초가 약초가 되는 놀라운 이야기들이다. 여기에 달빛 명상, 나에게 위로가 되는 와인 만들기, 오감을 깨우는 농사 경험하기 등 체험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박 사무장은 "농촌을 드러나는 풍경만으로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면의 이야기와 감동을 따라가면 위로와 휴식이 될 수 있다"며 "시골의 평화로운 가족의 일상을 보면서 어쩌면 탈출과 여유를 꿈꾸는 도시민들에게 또 다른 용기를 주기도 한다"고 했다.

전국에 체험휴양마을로 지정된 곳은 500여 개나 된다. 일부는 대규모 시설과 개발로 거의 리조트 수준인 곳도 있다.

박 사무장은 이 같은 농촌 개발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농촌 개발이 미래를 보고 단순 관광과는 구별돼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수입이 많지 않더라도 농촌의 자연환경이 그대로 보존되면서 생산과 가공 관광으로 이어지는 6차산업을 추구해야 합니다. 지장마을은 그렇게 진행되고 있어요."

마을 소유의 지장산은 전통적으로 능이 버섯과 약초의 보고다. 본격적인 포도 수확철인 8월과 수확 기간이 겹친다.

이 때문에 마을 주민들의 일손이 바빠 능이 버섯을 채취할 시간이 없다. 이때 체험객들은 1만원을 주고 입산해서 능이 버섯과 약초를 싹쓸이할 수 있다. 마을이 만든 체험 프로그램 덕분이다.

도시의 삶에 지쳐 쉼을 찾는 사람들, 한창 자랄 나이에 자연의 생기 있는 기운이 필요한 아이들, 그리고 나무와 풀, 자연의 생태를 탐구하는 학생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한때 체험마을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처했던 마을이 외부에서 들어온 귀농인과 토착 주민이 함께하는 공동체 사업 덕에 다시 예전의 살기 좋은 동네로 뒤바뀐 것이다.

정욱진 기자 penchok@msnet.co.kr

상주 고도현 기자 dor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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