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전혀 모르는 이들이었지만, 편지가 낭독되는 동안 그 일이 본인에게 일어난 일처럼 한 줄 한 줄 낭독될 때마다 참가자들 모두 환호했다. 낭독이 끝나자 곳곳에서 두서없는 질문들이 끼어들었다. "그다음은 어떻게 됐어요?" "답장은 뭐라고 썼어요?"
2년 반쯤 전, 독립출판물서점 더폴락의 문을 열면서 진행했던 오픈파티 참가 준비물은 누군가로부터 받은 손 편지였다. 옛 연인에게, 좋아하는 뮤지션에게, 학창시절 친구에게 받은 것 등 다양한 이야기가 담긴 참가자들의 편지가 낭독되었다. 누군가로부터 건네진 편지는 그 삶의 한 조각을 뚝 떼어낸 듯한 사람의 일상 풍경을 들여다보기에도, 또 그의 삶의 이야기를 듣기에도 좋은 텍스트가 된다. 한 개인에게 건네진 텍스트가 다수의 사람들 앞에서 낭독되는 순간, 듣는 이들은 모두 그 편지를 받은 사람이 되고 만다.
낭독의 즐거움을 느꼈던 또 다른 풍경이 있다. 올해 봄 서울 청파동 어귀에서 몇몇 분들과 식사를 하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꽃잎 지는 봄날로 옮아갔고, 자리를 함께했던 분이 내게 최승자 시인의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낭독을 권하셨다. 그것을 시작으로 각자의 기억 속 시들이 차례로 낭독되었고 함께 음미했다.
편지와 같은, 비단 개인적인 텍스트가 아니라도 낭독은 개인적 순간과 감정을 공유하게 한다. 기억할 만한 어떤 순간과 상황, 감정의 결까지도 함께 느끼고 싶을 때 나의 부족한 표현력 대신 시를 낭독하는 것이 오히려 많은 말들을 대신해 주기도 한다. 이렇게 낭독된 시는 누군가의 개인적인 삶의 이야기가 덧붙여져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최근 서점을 이전하면서 다시 열었던 오픈파티에서도 낭독회를 진행했다. 이번에는 아무런 준비물이 없었지만,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모이는 자리니 즉석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책과 구절을 소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였다. 독립출판서적인 '더멀리'의 시 한 구절을 시작으로, 몇몇 낭독이 이어졌다. 그리고 낭독할 것을 찾지 못한 이들은 자연스레 자신의 이야기와 살면서 맞이한 순간의 깨달음을 꺼냈다. 8년간 군인으로 살아온 이의 이야기, 20대 청년의 사랑 이야기, 최근 면접을 본 이의 이야기, 어색해 쭈뼛거리며 앞으로 나가던 이들이 자진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고, 시도 소설도 아니었지만 어떤 고백이 낭독되는 동안엔 모두 그들의 목소리를 가만가만 들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겹쳐 떠올렸다.
청년의 사랑 이야기 이후에는 위로를 건네는 부부가 이어받는가 하면, 최근 면접을 본 이의 이야기에 카페를 운영하는 이의 경험이 이어지는 등 모두 다른 책을 낭독했고, 다른 경험을 이야기했지만 낭독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또 개인의 이야기이지만 낭독을 통해 모두의 이야기가 되는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SNS를 통해 개인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요즘이지만, 낭독의 즐거움은 다른 삶의 방식만큼이나 모두 다른 음성으로 전하는 삶의 풍경들을 만날 수 있는 데 있는 듯하다.
김인혜 독립출판물서점 더폴락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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