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창의 에세이 산책] 꿈 고문 이제 그만

입력 2015-07-07 05:00:00

'나라를 지키다' 잠시 머리를 식히느라 게임을 한다는 게 밤을 꼴딱 새우고 있네. 한 잔 걸치고 들어오신 아빠는 아들이 메르스를 악당으로 설정하고 퇴치 작전에 여념이 없는 그 깊은 충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만 버럭 고함을 내지른다.

"이놈아 너 커서 뭐가 될래? 넌 꿈도 없느냐?" 이럴 때 뭐라고 대답을 하지, 이 나라의 집 대장이 술 드시고 올 때마다 겪게 되는 신참의 고충인지라 그럴듯한 답변을 해 드려야 하는 데 매번 실패하고 말았다. 그중에 '그냥요, 이렇게 살다가 죽을 건데요'는 최악이어서 한동안 스마트폰을 장식품으로 들고 다녀야 했다.

손가락은 여전히 부지런히 적군을 물리치는 데 사용하면서, 모처럼 아이는 자신 있게 대답한다. "아빠 같은 사람 될 거예요." 대장은 당황해 한다. 약간 취한 상태라 부하의 의중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빈정거리는 건지 칭찬하는 건지 구분도 못한 채 아무런 반응도 못하고 비틀거리며 물러선다.

'아빠는 꿈이 있어서 이렇게 사는가요? 멀쩡한 정신으로 들어오면 TV 앞에서 리모컨 미라로 변신하고 엄마하고 돈 얘기하다가는 먼 산이 되고 나에겐 공부, 공부 잔소리만 늘어놓는 좀벌레가 아빠의 꿈이었나요? 제발 이제 꿈 이야기 그만 하세요.' 이렇게 혼잣말을 늘어놓다 문득 아빠에게 미안해진다. 아빠가 불쌍하다.

'선생님, 나도 선생님처럼 교사가 될래요.' '너 몇 등이니? 꿈 깨라.' 고3 담임을 오랫동안 하면서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이 '꿈 깨라'이었다며 눈물을 흘리시던 어느 선생님의 말처럼 도대체 꿈이란 게 성공하고 무엇이 되는 거라면 아이들에게 꿈을 꾸라고 하는 것은 폭력이지 않을까?

교사가 꿈이었던 분에게 교사가 되어서 행복하냐고 물었더니 하나도 행복하지 않다고, 자아실현은 퇴근 후 헬스클럽에서 한다고 썩은 미소를 날리신다. 아프니까 청춘이란 말씀 제발 하지 마시고 우리들에게 역할을 달라고 청춘들은 울부짖는데 잘난 놈만 눈에 띈다. 하긴 장년은 더 아프고, 아파도 아프단 말도 못하는 게 노인인데.

'의사가 될래(what)보다는 왜 의사가 되려고 하는지(why) 생각해 보면 좋지 않을까? 사람을 고치고 싶은 게 꿈이라면 꼭 의사가 아니어도 괜찮지 않을까? 요즘 잘 나가는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 어때? 음식으로 사람을 고치는 거지. 아니면 사람 마음을 달래주는 카운슬러도 괜찮고.'

꿈 고문 이제 그만하고 충분히 힘들어 하는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봐 주면 안 될까?

◆'나라를 지키다'=부모 말을 잘 듣지 않고 말썽을 많이 피우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중2 때문에 북한군이 쳐들어오지 못한다는 우스갯소리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임.

간디교육문화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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