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스러워 말 못하지" 노인 성범죄 피해자 한 달 2명꼴

입력 2015-07-03 05:00:00

지난해 A씨는 70대 노모가 한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혼자서 끙끙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A씨는 노모에게 이유를 물었다. 처음에 머뭇거리던 노모는 결국 평소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한 중년 남성으로부터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을 털어놨다. 이에 화가 난 A씨는 성폭행 가해자를 찾아가 폭행을 했다. 가해자는 이를 빌미로 A씨를 폭행 혐의로 고소했고 아들을 범죄자로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 노모는 할 수 없이 성폭행 가해자와 서로 없는 일로 하자며 합의했다.

사회적 무관심 속에 노인 여성들이 성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노인을 '무성적' 존재로 여기는 사회적 인식과 노인은 피해 사실을 잘 신고하지 않는 것을 악용해 노인 대상 성범죄가 꾸준히 느는 것이다.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강간, 강제추행 등 60세 이상 성범죄 피해자는 2010년 10명에서 지난해 27명으로 3배가량 늘었다. 올해 들어서는 이달 1일 현재 총 12명으로 한 달에 2명꼴로 피해자가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통계보다 훨씬 더 많은 노인이 성범죄를 당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송경인 대구여성의전화 사무국장은 "노인들은 성범죄를 당하면 '내 탓'으로 돌리거나, 이를 드러내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 노인 대상 성범죄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인을 '무성적 존재'로 여기는 것도 노인 대상 성범죄를 부추긴다. 지난해 대구의 한 장기요양시설에서 요양보호사가 70대 여성 노인의 기저귀를 갈아입히기 위해 다른 보호자들 앞에서 바지를 벗기자 해당 노인 보호자가 시설에 성 학대라며 불만을 제기했다. 한 노인보호시설 관계자는 "병원에서 주사를 놓을 때 칸막이를 치지 않고 엉덩이에 주사를 놓는 사례도 빈번히 일어난다. 사소해 보이지만 노인 입장에서는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행동이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성교육이나 성범죄 예방 교육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6월 '보다 안전하고 건강한 노인의 성'이라는 주제로 노인 성생활 실태를 조사했지만, 노인 관련 성범죄 내용은 빠져 있었다. 또 경찰서마다 노인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예방 홍보 교육을 시행하고 있지만 대부분 형식적으로 진행된다.

남은주 대구여성회 대표는 "우리 사회는 이제 겨우 '노인의 성'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는 단계다. 노인 성범죄 교육이 효과를 거두려면 무엇보다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또한 성범죄 교육을 노인을 대상으로만 하지 말고 학교, 직장에서 성범죄 관련 교육을 할 때 노인 대상 성범죄도 함께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김의정 기자 ejkim9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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