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비된 한쪽 다리보다 치매 노모가 더 걱정"
두 달째 병상에 누워 있는 윤석호(44) 씨의 주위는 늘 조용하다. 얼마 전 '단일사지 근육위축증' 진단을 받고 병원 생활을 시작한 석호 씨에게는 병문안을 오는 가족도, 친구도 없다. 석호 씨가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어머니 단 한 명뿐이다. 하지만 석호 씨가 입원하게 되면서 어머니마저도 몇 달째 보지 못하고 있다. 10년 넘게 앓고 있는 파킨슨병에다 최근 치매까지 생긴 어머니는 요양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제는 적응할 때도 된 것 같은데 여전히 삶이 팍팍하고 외로워요.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지만 그때마다 제가 없으면 혼자가 될 어머니를 생각하며 순간순간을 버텼어요."
◆불우했던 유년 시절
석호 씨는 어린 시절부터 늘 굴곡진 삶을 살았다. 배 속에 아이가 들어서자마자 아버지는 어머니 곁을 떠났다. 석호 씨는 아버지의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젖먹이를 먹여 살리고자 석호 씨의 어머니는 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 남의 집 파출부에서부터 노점상, 행상 등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지만 여자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서울, 성남, 부산 등 안 다녀본 곳이 없어요. 한창 어려웠을 때는 산속에 판잣집을 짓고 산 적도 있어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는 형편이 어려워 중'고등학교 진학은 꿈도 못 꿨죠."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석호 씨는 꿈을 잃지 않았다. 젊음 하나로 어머니와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대 초반 군을 제대한 후 일용직, 아르바이트 등을 전전하면서도 야학을 시작했다. 이후 5년 만에 중'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27세에 고졸 자격증을 갖게 된 석호 씨는 번듯한 직장은 아니었지만 우유 회사 판촉사원, 마트 배달원 등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조건 했다. 남들처럼 가정을 꾸려 행복한 삶을 살아보겠다는 소박한 꿈도 가졌다.
하지만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파킨슨병으로 쓰러지면서 석호 씨의 꿈도 함께 무너졌다.
"어머니가 쉽게 피로하고 팔다리가 자주 아프다고 하셨지만 '나이가 들어 그러신가 보다'고만 생각했어요. 손발이 떨리자 그때야 큰 병원에 모시고 갔었는데 그게 병을 키운 게 아닌가 싶어요…."
◆한쪽 다리에 찾아온 마비
석호 씨는 젊은 시절부터 본인의 건강도 좋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앓았던 간염이 악화돼 20대 때 이미 간경화로 진행됐고 군대에서는 훈련 중 인대를 심하게 다쳐 1년간 병상에 누워 있기도 했다.
이 때문에 어렵게 구한 일도 석호 씨의 몸으로는 오래 버티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최근 석호 씨의 다리에도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 발을 내디뎌도 힘이 실리지 않고 고꾸라지는 일이 많았다. 최근에야 병원에 갔더니 오른쪽 다리에 단일사지 근육위축증이 진행되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지금은 발에만 힘을 못 쓰지만 재활 치료를 꾸준히 받지 않으면 한쪽 다리 전체를 영영 쓸 수 없을 것이란 말도 했다. 진단을 받은 지 두 달 만에 휠체어를 타거나 목발을 짚지 않으면 병상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됐다.
"병원에서는 치료를 받아도 다리가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순 없다고 해요. 치료비가 부담돼 건강보험이 되는 치료만 받고 있어요."
빨래를 하거나 생필품을 사러 외출할 땐 간병인의 도움도 필요하지만 석호 씨는 이마저도 아껴야 한다. 앞으로 어마어마하게 들 어머니와 자신의 치료비를 생각해서다.
요양시설에서 생활하는 석호 씨의 어머니는 얼마 전부터 치매 증세도 보이기 시작했다. 주위 사람을 의심하고 가끔 난폭한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어머니 쪽 먼 친척이나 일을 하며 만난 친구들에게도 자꾸 손을 벌리다 보니 부담이 됐는지 지금은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재활 치료를 받아도 증세만 더디게 해줄 뿐이라고 하는데 이 몸에 어머니까지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하기만 해요."
허현정 기자 hhj224@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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