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아파트 유감-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

입력 2015-06-30 05:00:00

1971년생. 경북대 노어노문과 석사(러시아 현대소설).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사범대 박사
1971년생. 경북대 노어노문과 석사(러시아 현대소설).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사범대 박사

세계에서 가장 집값 비싼 도시 중 하나

"공부는 비전 없다"며 가게 점원 취직

청춘을 바친 대가가 60년 된 아파트

인생 전부를 걸도록 강요하는 공간

얼마 전 가까운 러시아 친구가 마침내 모스크바 시내에 아파트를 샀다고 연락이 왔다. 공부를 잘해서 장학금을 받고 극동 소도시에서 모스크바로 유학 온 친구였다. 교육학을 전공하면서 박사 논문을 준비하던 친구는 어느 날 갑자기 공부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전망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이렇게 졸업해서 강사가 되고 교수가 되어도 모스크바에 방 한 칸 마련할 수 없고, 시골에 사는 어머니를 모셔오는 것도 요원하다는 것이다. 며칠에 걸친 만류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때려치운' 친구는 뜬금없이 신발 가게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른바 제일 잘 나가는 엘리트 대학원생이 하루아침에 점원이 된 것이다. 변덕스런 여자들의 시중을 들면서 신발 한 켤레를 팔고 친구가 받았던 수당은 삼천원 남짓, 정해진 월급 없이 수당만 있다 보니,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열두 시간 넘게 일했던 친구의 발은 늘 퉁퉁 부어 있었다.

그렇게 모은 돈은 한 번도 은행에 넣는 법이 없었다. 십만원이 하루아침에 천원이 되었던 경제 위기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던 러시아인들은 은행을 믿지 않았고 돈이 조금 모이면 외화로 환전해서 집안 곳곳에 숨겨두곤 했다. 2002년부터 일을 시작한 친구는 낯선 사람 여럿과 모스크바 시내 아파트 하나를 빌려 공동생활을 했다. 전세 개념이 없는 모스크바에서는 작고 허름한 아파트 월세조차 한 달에 백만원을 호가한다. 그러니 이런 종류의 공동생활이 외지인들에겐 유일한 거주 방법이다. 십 년 넘게 그렇게 살던 친구가 요번에 자기 집을 마련한 것이다. 비록 변두리 '흐루시초프카'에 불구하지만, 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친구는 웃었다.

1950년대 흐루시초프는 주거 문제를 저비용으로 해결하기 위해 아파트를 대량으로 짓기 시작했다. 방 두 개, 좁은 욕실과 거실을 갖춘 똑같은 형태의 아파트들이 소련 전역에 건설되었다. 미적 감각이 떨어지는 20세기의 새로운 주거 형태와 흐루시초프를 함께 비꼬듯 이 아파트는 '흐루시초프카'라고 불렸다. 친구가 구입한 것은 여전히 모스크바 곳곳에 남아있는 이 60년도 더 된 아파트였다.

축하해주면서 코끝이 찡해졌다. 모스크바는 세계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도시 중 하나다. 그곳에 집을 사기 위해 친구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되었던 소련 영화 는 공장에서 일하던 시골출신 처녀들이 친척의 고급 아파트에 잠시 살 기회가 되자 신분을 속이고 부잣집 아들을 유혹해서 인생역전을 하려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냉혹한 도시 모스크바에서는 눈물을 흘리고 있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무엇을 얻으려면 죽도록 노력하라는 말인데, 친구는 아마 이 말을 수천 번도 더 되뇌었을 것이다.

소련 시절, 대다수 러시아인은 좁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국가가 거의 무상으로 제공한 '다차'라는 주말농장을 소유했다. 우리말로 별장이라고 옮겨지는 이 다차는 실은 허름한 농가주택과 그에 딸린 텃밭을 의미했다. 주말이나 여름휴가 두 달은 이곳에서 쉬면서 농사도 지어서 겨울대비를 했던 것이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러시아인들에게 이런 삶은 더 이상 허락되지 않는다. 부자들이 다차를 있는 대로 사들여서 아파트나 호화 별장을 짓다 보니 모스크바 근교 소박하던 다차 마을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다.

특별히 명석했던 그 친구는 공부를 계속했더라면 좋은 학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 대신 친구가 청춘을 다 바쳐서 얻은 것은 방 두 개짜리 낡은 아파트. 어느 것이 더 의미 있는 것인지 섣불리 말하기는 힘든 것 같다. 우리에게도 아파트는 얻기 힘든 것이 된 지 오래다. 아니 천정부지로 치솟는 아파트 값을 보면 우리나라에선 청춘뿐만 아니라, 미래 전부를 저당 잡혀도 구하기 힘든 것이 된 것 같다. 이래저래 나는 아파트에 유감이 많다. 개성도 미적 감각도 찾아볼 수 없는 그 외형이 그러하고, 무엇보다 누구나 집을 가질 수 있다는 환상을 부여하면서, 그걸 위해 인생 전부를 걸도록 강요하는 그 공간이 말이다.

윤영순/경북대 교수·노어노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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