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특성화 그늘] 간판에 밀린 30년 터줏대감 뒷골목 신세

입력 2015-06-25 05:00:00

정비된 도로엔 유명 체인점 허름한 구석엔 기존 상인들

대구 서부시장 \
대구 서부시장 \'프랜차이즈 특화거리\'가 들어서면서 주변 상가 월세가 인상돼 영세한 기존 상인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특화 거리가 생기면서 우리는 생존권을 빼앗겼습니다."

24일 오전 11시 대구 서구 비산동 서부시장. 22일 정식 개장한 '프랜차이즈 특화거리'(이하 특화거리)에 들어서자마자 확연히 달라진 시장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잘 정비된 도로, 깔끔한 식당 내부와 시설, 특화거리에 입점한 상인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하지만 120m에 이르는 특화거리를 벗어나자, 또 다른 시장의 모습과 마주했다. 서부시장 '원주민' 격인 기존 상인들이 운영하는 가게가 늘어선 허름한 전통시장의 '민낯'이 펼쳐졌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영업을 시작하지 않은 특화거리 내 가게들과는 달리 기존 가게들은 문을 열어놓았지만 손님은 찾아볼 수 없었다. 상인 대부분이 가게 앞에 나와 손님을 기다리거나 가게 안에서 멍하니 골목을 바라볼 뿐이다. 한 상인은 "여기는 1960년대, 저기(특화거리)만 2000년대"라며 "누가 여기에 오겠느냐"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서부시장은 '두 얼굴'이 공존한다. 특화거리가 들어서면서 사람이 드나들지 않던 시장에 하루에도 수천 명의 손님이 오고 있다. 특히 젊은이들의 발길이 늘어나면서 황량한 골목에 생기가 넘치고 있다. 반면 기존 상인들의 얼굴은 어둡기만 하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 넘게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생활하던 상인과 주민들은 최근 치솟은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할 상황에 부닥쳤다. '울며 겨자 먹기'로 높은 월세를 감당하며 장사하는 상인들도 최근 사람이 몰리면서 골목이 어지럽혀지자, 불쾌감만 늘었다는 반응이다.

이곳에서 30년 이상 장사를 해왔다는 한 음식점 주인 이모(70) 씨는 "요즘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는 말을 새삼 실감한다"며 울상을 지었다. 이 씨의 가게는 특화거리가 들어서기 전에만 해도 그럭저럭 꾸준히 벌이가 됐던 곳이었다. 그러나 특화거리가 들어서면서 상황은 확 달라졌다. 그나마 오던 단골손님조차 이제는 특화거리로 돌아서고 있다. 이 씨는 "기존에는 우리 가게에 하루 10명 정도 손님이 왔다면 지금은 많아야 5명 정도다. 예전에는 막걸리를 하루에 1짝씩 주문해 챙겨뒀었는데 이제는 두 병이면 충분할 정도"라고 털어놨다.

특화거리 내 상가와 업종이 겹치는 음식점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분식집을 운영하는 상인은 "그래도 예전에는 시장 찾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둘러보기라도 했지, 이제는 아예 특화거리에만 들러서 먹고 싶은 것 먹고 놀다가 집에 가버리니까 희망마저 사라졌다. 죽어가는 동네를 특화거리로 확실하게 죽은 동네로 만들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기존 상인들은 끝도 모르고 오르는 월세에 한숨만 깊어지고 있다. 한 상인은 "지금 이 주변에 월세를 견디지 못하고 떠나간 상인이 대다수"라며 "나도 10월에는 집주인이 월세를 올려달라고 했는데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이 턱없이 오른 월세를 치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인근 주민도 "이건 시장을 살리는 게 아니고 '진짜 시장'을 죽이는 것이다. 사람은 몰려드는데 화장실이나 주차장도 제대로 돼 있지 않으니 사람 살 곳이 전혀 못되고 있다"며 울분을 토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서부시장 특화거리를 조성한 대구 서구청은 '상생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서구청 관계자는 "특화거리 조성사업을 추진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점이 기능을 상실한 시장을 다시 살리는 것이었다"며 "주변 월세가 올라가 기존 상인들이 피해를 입는 것까지 구청에서 관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김의정 기자 ejkim9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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