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광복 70주년이 되는 동시에 6'25전쟁이 일어난 지 65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1월부터 국회에서는 낙동강 다부동전투 승전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국회의 입법 발의가 진행되고 있으며, 특히 칠곡군에서는 전문가를 중심으로 이를 위한 세부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다부동전투는 대한민국 국군과 학도병들이 끝까지 전선을 사수하여 마지막 보루인 대구와 부산을 지켰고, 이를 계기로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서울을 수복했으며, 마침내 북한 초산까지 진격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전투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 학생 등 후손들에게 목숨을 바치면서 지켜냈던 나라를 위한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국가유공자에 대한 존경심과 보훈 정신을 잊지 말자는 상징적, 교육적 취지가 이 법을 제정하게 된 주요 배경이라 할 수 있다.
1950년 6'25전쟁 당시 북한군은 서울을 점령하였고 연이어 파죽지세로 천안, 대전, 영동, 김천, 칠곡, 왜관 등 낙동강 북쪽까지 점령하여 대한민국의 존망이 백척간두에 이르렀다. 북한은 1950년 8월 임시 수도 부산과 대구로 통하는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공격에 투입된 5개 사단 중 제1사단, 제13사단, 제15사단과 제105전차사단을 대구 축선에 집중시켜 공격했다. 이에 국군은 왜관에서 낙성리까지 국군 제1사단, 낙성리에서 의성까지 제6사단, 현풍에서 왜관까지 미 제1기병사단 등 3개 사단을 배치했다.
제1사단은 8월 1일 미군 제25사단으로부터 책임 구역을 이어받아 9일 동안 낙동강 연안에서 전투를 벌여 6천867명을 사살하고 각종 포 23문과 탱크 10대를 파괴했다. 8월 11일 육군은 왜관 북방 303고지-다부동-군위-보현산으로 이동하여 적군을 저지하라는 명령을 받아 국군 제1사단은 강변 전투를 종결하고, 8월 12일 야간에 새로운 다부동 전선으로 이동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시행되면서 미군이 도착함에 따라 대대적인 반격으로 이 지역에서 북한군을 완전히 몰아냈다.
이 전투에서 연합군이 적의 공세를 막아냄에 따라 북한군은 낙동강 전선을 돌파하는 데 실패하였다. 북한군은 이 전투에서 전력의 상당 부분을 소진하여야 했고, 이후 전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반면에 대한민국 국군에게 있어서는 낙동강 전선을 고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부여하게 해준 결정적인 전투였다.
국가기념일이란 1973년 3월에 시행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24142호)에 따라 정부가 제정'주관하는 기념일을 말한다.
국가기념일은 원래 공휴일이 아니지만,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19674호)에 의해 일부 기념일이 공휴일이 되었다.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면 주관부처가 정해지고, 이후 부처 자체적으로 예산을 확보해 기념식과 그에 부수되는 행사를 전국적인 범위로 행할 수 있고 주간이나 월간을 설정하여 부수 행사를 할 수 있다.
다부동전투 승전일(9월 24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기 위해서는 첫째, 다부동전투 국가기념일 추진위원회의 결성과 둘째, 다부동전투 연구용역 및 공청회가 필요하며 셋째, 주관부처인 행정자치부에서 역사적 의의, 상징성, 유사 및 중복 여부, 관계단체 의견수렴과 국민 공감대 형성 등 종합적인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 밖에도 관계부처 의견 조회와 국무조정실 심사, 국무회의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대구경북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아 대구정신의 한 축인 '다부동전투 승전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될 수 있도록 하자.
김태열/영남이공대 교수 (한국보훈학회 대구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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