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메르스가 방미를 연기시키다!

입력 2015-06-23 05:00:00

한반도를 둘러싼 4강은 미·중·일·러

친미파 위주 국가 자문단 재고해야

대박 통일 내다본다면 주위 둘러보고

친중·친일·친러 전문가 황금 배분을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가 난데없이 태평양 초입까지 동진하며 한반도를 강타하고 있다. 낙타가 모래사막을 가로 넘어 짙푸른 산천(山川)을 침노한 격이니 가히 불예측성의 시대라고 하겠다. 더욱이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까지 연기하지 않을 수 없게끔 날뛰고 있으니 고삐 풀린 한혈마가 된 것인가 싶다. 하지만 말이다. 우리 역사 속에서 친일, 친러, 친중 바람들이 나라를 들어먹을 정도로 거센 적은 있어도 중동의 바람은 그 아무리 강해도 우리를 쓰러뜨리지는 못했었다. 다만 이번 친미 바람의 기회를 일시적이나마 지연시킨 것은 국내적으로는 '자라-솥뚜껑의 효과'만큼이나 대단한 게 분명하다 싶다.

친일, 친중 등, 친(親) 뭐라고 하니 아예 거부감부터 생기겠다. 한때 친일파, 친중파, 친러파라는 게 우후죽순 난립하여 치고받다가 국권을 훼손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요사이는 한-일 관계가 아주 불편한 지경이니 친일이란 말만 나와도 너나없이 눈에 쌍심지가 돋게 된다. 또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하도 용맹무쌍하니 친러라고는 해도 떨떠름하기는 매한가지일 게다. 그러면, 친중이라고 하면 어떤가? 중국과 우리의 경제적 관계가 너무나 깊은 연고로 미국과 일본이 시샘하는 바가 적지 않다 싶어 저어되기는 또 마찬가지다. 결국 친미밖에는 남지 않는다. 미국은 우리와 피를 함께 흘린 혈맹인 만큼 아무래도 친미라 하면 좀 당당해지지는 않는가? 그러나 친미만 하면 모든 게 술술 풀리기만 하는가? 최근 미국 쪽에서는 아베의 역사인식에 너그러운 미소까지 보내는가 하면, 박 대통령의 방미에 앞서 한국이 중국 주도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라는 '숙제 아닌 숙제'까지 던지는 것을 보면 조금은 마음 불편해지지는 않은가? 그런 가운데, 한반도를 위요(圍繞)한 동북아시아의 정세는 걱정할 게 없이 평화롭기만 하고 남북관계는 조용하기만 한지도 우리는 궁금하다.

독일이 통일을 하고자 할 때다. 서독에는 미영불소 4국의 긍정적인 이해가 필수적이었다. 이웃나라, 프랑스와 영국으로부터는 서방으로서 같은 이념을 공유하는 나라인 만큼이나 쉽게 이해를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극렬히 반대한 나라들이 이들 국가였다지 않는가. 게르만 민족이 통일하면 한 세대가 끝나기 전에 유럽을 다시 제패할 것이라는 우려를 쏟아내면서 말이다. 당시 서독으로서는 먼저 미국에 공을 들이며 영국과 프랑스를 측면에서 움직여 달라고 했었고, 동시에 어려움에 처한 소련을 회유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결국 미국과 소련의 이해 속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어려운 양해를 거둘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면 한반도 통일도 가늠해 보자. 우리에게는 미중일러가 있다. 이 중에 어느 쪽이 영국과 프랑스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냐를 숙고해 보면, 주변 4강에 대한 우리의 외교가 얼마나 고차원적이 되어야 할지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겠다.

여기저기서 우리의 외교 전략을 점검하고 분석하는 국제회의가 연이어지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와 걱정을 내비치곤 한다. 나라를 움직이는 자문단들이 너무 단선적으로 친미파 위주로 진용을 갖추고 있지 않느냐 하는 게다. 한'중 관계가 이토록 좋음에도 친중파가 일선에서 활약하는 바가 크지 않고, 아베 정권이 들어서고는 친일파, 아니 지일파(知日派)까지도 뒷전으로 밀려나 있으며, 그나마 러시아만이 북한에 대해 뭔가를 하고 있지만 친러파는 아예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이다. 우리로서는 동북아시아가 요동치면 칠수록 이들 전문가의 황금 배분 및 활용이야말로 미래를 대비하는 크나큰 지혜가 될 것이다. 힘들었던 과거가 웅변하듯, 우리가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고 친중, 친일, 친러라며 외쳤을 때는 오늘같이 번성하며 잘 살지를 못했었다. 가야 할 길이 어느 쪽인가는 자명하다. 우리는 거반 친미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는 우리를 한 방향으로만 올인할 수 없게 하지 않는가. 대박 통일을 내다본다면 그 심지(心志)만은 변함없어야 되겠지만 친사방(四方)으로 꼭 둘러보며 나아가야 할 것이다.

전대완/계명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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