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보기 싫은 노란 점퍼

입력 2015-06-11 05:00:00

필자가 30년 전 칠곡 왜관에서 근무할 때 미군과 국제결혼을 한 어느 가정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어린 아들이 고열과 기침을 심하게 하여 약을 먹이고 읍내 병원에 빨리 가보아야 하지 않느냐고 하였다가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분의 말에 의하면 당시에 미군으로 한국에 근무하게 되면 꼭 숙지해야 할 3가지가 있었는데, 첫째 한국의 수돗물은 절대 먹지 말고 미국에서 공수되어 온 생수를 먹을 것, 둘째 아무리 몸이 아파도 한국에서 판매되는 약을 먹지 말고 병원도 가급적 이용하지 말고 미군부대 안의 의무대를 이용할 것, 셋째 터널과 교량을 지날 때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으니 최대한 신속하게 빨리 지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반공교육과 더불어 미군에 대한 고마움과 우호적인 정서가 지배하던 시대를 살아왔던 나로서는 당시 그 이야기에 무척 당황했고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 후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선박의 침몰과 항공기의 추락이 이어지는 참담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이미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구조적인 모순과 문제의 민낯을 그대로 들여다 보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국민행복과 경제부흥이라는 기치를 들고 출범했던 박근혜정부의 세월호에서부터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에 이르기까지 행보를 보면 참으로 답답하고 속상하다. 며칠 전 중국 양쯔강에서 450여 명을 태운 여객선이 침몰하였다. 그때 리커창 총리가 신속하게 구조 현장을 지휘하고 있는 모습이 외신을 타고 보도되었다. 2012년 12월 12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던 한인 전쟁 영웅 제이슨 박이 두 다리와 손가락 2개를 잃는 중상을 입고 월터리드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문병 와 "미국을 대신해서 감사한다"고 했었다. 그 뒤 지난달 30일 워싱턴 근교의 한 골프장에 와 있던 제이슨 박을 알아보고 오바마 대통령이 다시 찾아 2년 6개월 만에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모습이 신문지면을 장식하였다.

박근혜정부가 들어서고 지금까지 국무총리 후보자와 장관 후보자들을 보면 한결같이 위장 전입, 병역 기피, 세금 탈루, 부정부패가 출세를 위한 필수 스펙이 되어 버렸다. 얼마 전 사퇴했던 국무총리도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다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너나 잘하세요"라는 비아냥을 듣는 참담한 모습을 보였고 우리 민초들은 먹먹한 가슴으로 그것을 바라보아야 했다.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박근혜 대통령이 어디에 있었느냐를 두고 얼마나 말들이 많았고 억측이 무성하였는가? 그런데 지금 메르스가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확산되는 엄중한 상황에 이르기까지 박 대통령은 시행령 등과 관련해 야당과, 더 나아가 여당과도 각을 세워 대립하는 데 골몰하였다. 박근혜정부는 이상하게도 중대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문제 해결에 역량을 결집하기보다 악성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자를 색출하여 엄벌에 처하겠다는 식으로 대처했다. 사실이지 우리나라만큼 정보에 대한 차별이나 왜곡이 심한 나라도 없다. 정부가 명확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 의구심과 유언비어는 커질 수밖에 없다.

급기야 메르스 사태가 사망 2명, 확진 환자 28명, 격리 1천 명을 넘어서고 대통령은 무얼 하고 있느냐는 여론이 들끓고, 언론들이 대통령에 대한 질타를 시작하자 대통령은 드디어 지난 3일 청와대에서 '메르스 대응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를 주재하였다. 이 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입었던 노란색 점퍼가 참 보기 싫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입고 있던 노란 점퍼의 의미를 잘 새겨 보았으면 한다. 왜 리커창이나 오바마와 같은 지도자가 우리의 민생 현장에는 없을까? 조용필의 노래 '못 찾겠다 꾀꼬리'를 흥얼거려 본다.

김휘수/재단법인 대구애락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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