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기억에도 오류가 있다

입력 2015-06-02 05:00:00

건망증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기억력에 장애가 생겨 금방 잊어버리거나, 드문드문 기억하거나 또는 어떤 일정한 시기 이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증상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요즘 부쩍 잊는 일이 잦다. 약속 장소와 시간을 잊기도 하고 약속 그 자체를 까맣게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보다 더한 것은 기억에 오류가 생겨 벌어지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다. 청첩장을 받고 예식 시간이나 장소를 착각하여 엉뚱한 예식장에 가서 혼주를 찾다가 망신당하는 일 같은 경우이다.

얼마 전 '다가오는 27일 오후 6시 30분 ○○○에서 모임을 갖습니다. 꼭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공지 문자를 받고 휴대폰 일정관리 메뉴에 기록해 뒀다. 머릿속에도 단단히 입력하여 꼭 참석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날, 모임 장소에 갔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일등으로 온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이게 무슨 일인가? 30분이 지나도록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 회장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일주일 뒤 오늘이란다! 혼자 저지른 건망증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가 있는데 선배님 앞이라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허망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니, 남편이 "도대체 정신을 어디다가 놓고 다니는 거요?"라고 한다. "늘 들고 다니는 걸요"하고 웃어넘겼으나 마음은 여간 착잡한 게 아니었다.

이튿날, 혹시나 해서 보건소를 찾았다. 친구들도 치매검사를 했다기에 내친김에 치매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의사 선생님은 검사지를 주었고 어렵지 않게 맞추어 나갔다. 치매는 아니란다. 가끔 찾아오는 건망증이라고 하니 한숨 놓았다. 이와 같은 증세는 많은 사람에게 있다고 하여 조금은 위로도 되었다.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일을 잊어버리는 것은 더욱 안타깝다. 꼭 기억해서 불러주어야 하는 사람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 때 참으로 민망하고 미안하다. 가끔은 망각이란 것이 편리하고 좋을 때도 있다. 지난날의 실수나 실패의 고통,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남은 아픔은 차라리 잊어버림으로써 마음이 편하다. 다람쥐가 도토리를 땅에 묻고 잊어버릴 수 있어 우리는 상수리나무 숲을 볼 수 있지 않은가. 우린 모두 잊고 잊히며 그렇게 살아간다. 아이러니하게도 잊고자 하는 것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뼛속까지 사무친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잊으려 할수록 더욱 기억되는 것은 무슨 조화일까? 아마 우리의 몸과 마음이 기억하기 때문이리라.

종이 위에 쓴 글자는 지우개로 지운다지만 우리의 마음과 몸에 기록된 것은 쉬이 지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100세 시인 '시바다 도요'가 '잊어가는 것의 행복, 잊어가는 것에 대한 포기'와 같이 잊는다는 것이 행복일 수 있다고 한 데에 공감한다. 누군가가 '성공은 기억창고 속에 저장된 쓸데없는 것들을 지워서, 쓸 데 있는 것이 들어갈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라고 한 것처럼 삶의 성공을 위해 기억창고를 비우고 새로운 것을 채울 때가 된 것 같다.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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