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단락 인문학] 과거 성찰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

입력 2015-05-11 05:00:00

홀로코스트는 나치의 지도자 몇몇이 주도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수많은 협력자와 방관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중략)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이에 관련된 사람들이 모두 지극히 평범한 이들이었다는 점이다. 집에서는 좋은 가장이자 착실한 남편이었고, 자상한 아버지였다.(송충기의 '나치는 왜 유대인을 학살했을까' 중에서)

노벨상을 패러디해 황당하고 기발한 연구에 상을 수여하는 이그노벨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2013년에 심리학 분야에서 이그노벨상을 수상한 로랑 베그는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권위에 대한 복종을 통해 부도덕에 굴복함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만 관대한 행동을 하고 있음을 꼬집고 있습니다. 로랑 베그의 질문에 일찍이 답한 또 다른 사람으로는 18세기 영국의 보수주의 정치사상을 정립한 에드먼드 버크가 있습니다. 그는 "악이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선한 인간들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다"고 답해 주었습니다.

20세기 야만의 정점에 있는 사건이 유대인 학살사건인 '홀로코스트'라는데 많은 사람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히틀러와 나치당원 등 몇몇 악한 개인과 조직만이 이러한 인간에 반하는 죄악을 저질렀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듭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나와 우리 내부를 들여다보고 성찰하기보다는 나와 우리를 제외한 타인과 그들의 존재, 환경을 탓하면 나와 우리는 그냥 이대로 있어도 문제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책 '나치는 왜 유대인을 학살했을까'에서는 악의 화신인 히틀러와 나치의 몇몇 지도자 때문이라는 쉬운 답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나치의 지도자 몇몇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협력자와 방관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바로 나와 당신이 현재에 벌어지고 있는 또 다른 반인권과 비평화적 사건을 방관하고 있으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것은 아닌지 반문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이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듯이 이번에 한 단락 인문학에서 소개한 책 '나치는 왜 유대인을 학살했을까'에서도 유대인을 학살한 이들을 '악마'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그저 나,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음을 강조하고 있지요. 결국 역사에 대한 나와 당신의 성찰과 이에 대한 기억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는 안네 프랑크의 일기 구절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안네 프랑크의 꿈과 희망은 여전히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성찰과 기억을 통해 실현해야 할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모든 것이 지금보다 더 나아지고, 이 야만적인 행위도 끝이 나고, 평화롭고 평온한 세상이 다시 찾아온다고 믿는다. 그때까지 나의 꿈들을 간직하고 있어야만 한다. 내가 가진 이상을 실현시킬 수 있는 날이 꼭 올 것이다."

안병학 송현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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