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한옥] <하>되살아 나는 한옥

입력 2015-05-08 05:00:00

도심 속 한옥이 새로운 부활을 시도하고 있다.

재개발로 헐리기도 하고, 주인의 손길이 닿지 않아 폐허가 된 채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등 위기에 놓였던 한옥들이 새롭게 탈바꿈하기 시작한 것이다.

낡고 오래된 한옥이 게스트하우스로 변신해 관광 명소가 되는가 하면 예스러운 분위기를 내는 카페가 돼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이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한옥의 아름다움에 관심을 두는 이들이 늘어나자 최근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도 한옥 살리기에 나섰다. 한옥 신축, 개보수 때 공사비 일부를 지원해주거나 한옥을 허물려는 소유주를 설득해 한옥을 보존하기도 한다.

수적으로는 물론 질적으로도 양질의 한옥을 보유한 대구시가 이제 막 한옥 지키기에 나선 만큼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한옥들이 상업적으로 변질되거나 국적 불명의 한옥들이 우후죽순 들어서는 것을 막고 지역 특색이 반영된 한옥을 보존하기 위한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할 때이다.

◆한옥을 지키려는 노력

대구시는 2013년 11월 제정한 대구시한옥진흥조례에 따라 올해 3월부터 한옥을 신축하거나 개보수할 때 공사비 일부를 지원해주는 한옥진흥사업을 시작했다.

이에 맞춰 한옥 지키기에 본격적으로 나선 지자체도 있다. 중구청은 대구 한옥 총 1만753채 중 달성군(2천420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한옥(1천752채)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한옥과 근대 건축물 보전에 가장 활발히 앞장서고 있다. 지난해부터 8개 구군 중 유일하게 '한옥 보전 사전 권고제'도 시작했다.

평소 건축물관리대장과 한옥 데이터베이스를 함께 관리해 구청으로 한옥 철거를 위한 멸실 신고가 들어오면 공문, 전화 등으로 한 달간 한옥 소유자에 대한 설득에 들어간다.

소유자가 끝내 철거하겠다는 마음을 굽히지 않으면 차선책으로 한옥 기와, 목재 등의 자재를 구청이 수거해 향후에 짓는 한옥에 쓸 수 있도록 동의를 유도한다.

실제로 최근에는 중구 한복판에서 허물어질 위기에 있던 한옥이 구청의 보전 권고로 위기를 모면한 적도 있다.

올해 초 대구 중구 종로2가의 한 모텔 소유자가 모텔 건물 바로 옆 사람이 살지 않는 한옥 부지 약 200㎡(60평)를 주차장으로 쓰기 위해 매입했다. 곧이어 철거를 위해 중구청에 멸실 신고를 하자 해당 부서 직원들이 다시 생각해보라며 설득했고 결국 소유자의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지금 그 한옥은 원래 사용하던 기둥까지 보존한 채 한창 새 단장 중이다.

한옥 주인 박순연(66) 씨는 "구청 직원들의 말을 듣고 한옥을 보며 한참을 고민해보니 한옥을 수리해 고쳐 놓으면 도심 한가운데서 참 보기 좋은 풍경을 만들 것 같았다. 지금은 백번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옥은 변신 중

최근에야 한옥의 변신에 주목한 자치단체와 달리 시민들은 이미 도심 곳곳에 보석처럼 있는 한옥에 눈뜬 지 오래다.

빌딩 숲 한가운데 웅장한 한옥을 새로 짓는가 하면 낡은 한옥을 수리해 고풍스러운 병원, 카페 등으로 바꿔 '한옥의 재발견'을 시작한 것이다.

'임재양 외과의원' 임재양 원장은 2012년 6월 중구 삼덕3가 동부교회 뒤편에 ㄷ자형 한옥을 지었다. 마당 한쪽에 있는 2층짜리 일본식 가옥은 수리해 1층은 환자들을 위한 휴식공간으로, 2층은 식이요법 강의를 위한 곳으로 탈바꿈시켰다. 도심 속 널찍한 마당에 한옥과 일본식 가옥이 어우러진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2012년에는 '제21회 대구시 건축상' 금상도 받았다.

중구 대봉동 웨딩숍들이 있는 대로변에서 골목길로 조금만 들어가면 한옥 동물병원을 볼 수 있다. 2011년 2월 문을 연 '오원석 황금동물병원'은 마당이 넓어 날씨가 좋은 날이면 마당이나 대청마루에서 뛰어놀거나 진료를 받는 강아지, 고양이들을 볼 수 있다.

고풍스러운 외관과 어울리게 이곳은 손님들 사이에서 노령, 호스피스, 중증진료 특화병원으로 입소문이 났다.

대구에 방문한 관광객의 발길을 끄는 게스트하우스도 생겨났다. 2012년 '옛 구암서원'을 시작으로 판, 더스타일, 지난해 7월에는 공감까지 총 4곳의 게스트하우스가 중구 도심에 생겼다. 한옥 카페 역시 젊은 층 사이에서 더는 낯선 곳이 아니다.

2010년 4월 낡은 한옥이 많던 중구 대봉동 주택가에 생긴 한옥 카페 '모가'(moga)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도심 곳곳에 한옥을 리모델링한 커피 전문점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이곳은 문을 연 후 처음 1, 2년 동안은 손님 대부분이 5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었다. 지나가다가 막걸리, 파전을 파는 주막인 줄 알고 찾아오는 손님도 있었다. 그러다 점차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 등으로 젊은 층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지금은 대구를 방문하면 꼭 들러야 하는 명소가 됐다.

정유경 대표는 "기와, 기둥, 창문 하나까지 그대로 살려 수리비만 한 해에 수백만원이 들지만 옛 한옥의 멋스러움에 타지에서 이곳까지 찾아오는 손님들을 보면 후회스럽지 않다"고 했다.

대봉동 일대의 한옥 카페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자 중구 동성로, 계산동, 종로 등에도 한옥 카페가 연이어 생겨났다.

최근에는 수성못, 남구 카페 골목, 달서구 등 대구 곳곳에서 낡은 한옥을 수리해 손님들의 발길을 끄는 카페, 레스토랑을 볼 수 있다.

◆지나친 상업화는 경계해야

500여 채 이상의 한옥이 들어선 전주 한옥마을은 관광객이 연간 600만 명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대표 관광 명소다. 2010년 국제슬로시티연맹이 전주 한옥마을을 슬로시티(Slow City)로 지정한 것을 계기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 일부 한옥들이 상업적으로 변질되면서 초기 한옥마을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10년 100개도 채 되지 않았던 상가는 현재 500곳이 넘어섰고 넘쳐나는 인파에 한옥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하나둘 떠나기 시작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자 전주시는 뒤늦게 제재에 나섰다.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 패스트푸드점, 제과점 등 한식과 어울리지 않는 음식점들의 입점을 막았다.

2013년부터 신축되는 한옥은 층수도 1층으로 제한하는 한편 대문과 담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는 조례도 제정했다. 또 간판은 나무로 되어야 하고 영어는 금지하는 규정도 추가했다. 박화성 전주시 한옥마을사업소장은 "한옥마을이 관광객들에게 알려지기 전부터 이 같은 상황을 예상하고 준비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앞으로 한옥마을에 들어서는 한옥에 대해서는 규제를 좀 더 세부적으로 만들어 한옥 마을의 지역 정체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할 것이다"고 했다.

이에 따라 한옥 관광 자원화에 이제 막 첫발을 뗀 대구도 상업화나 한옥의 변질을 막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동정 사단법인 대구문화유산 대표는 "교통이 편리한 대구 도심에 한옥 마을이 조성되면 대구의 영구한 문화자산이 될 것이다"며 "한옥 마을이 상업적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무실, 주택 등 사람들이 사는 한옥을 만들거나 무형문화재촌 등을 조성해 지역 특색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허현정 기자 hhj224@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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