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들 인간다운 죽음 선택…가정의 달 세대는 달라고 가족 사랑은 한마음
최근 대구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A(76) 할아버지가 실려왔다. 급작스러운 심근경색.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심폐소생술로 심장박동을 살려낸 뒤 인공호흡기로 생명을 유지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의료진은 더 이상의 처치를 하지 않았다. 함께 병원을 찾은 가족 중 누구도 의료진에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유는 할아버지가 평소 자녀들에게 밝혀온 신념 때문이었다. "혹시 위험한 상태에 빠져 살아날 가망이 없다면 억지로 목숨을 연명하게 하지 말라"는 얘기를 할아버지는 달고 살았다. 이를 이해한 가족들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할아버지는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사망 선고를 받았다.
A할아버지처럼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회복이 불가능한 중증 질환 환자들이 임종 직전까지 치료를 받으며 고통을 겪는 대신 인간답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 것.
'심폐소생술 거부(DNR) 사전의료의향서' 서약을 하는 이들이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DNR은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처했을 때 심폐소생술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사전에 밝히는 것이다.
경북대병원 경우, 2012년 362건이던 DNR 건수는 지난해 882건으로 2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했다. 올 3월 말까지 접수된 DNR도 274건으로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올해 1천 건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대구가톨릭대병원도 2013년 674건이던 DNR 건수가 지난해에는 890건으로 증가했다. 영남대병원도 2012년 905건이던 DNR 접수가 지난해 1천332건으로 32.1%나 증가했다.
심폐소생술 거부 서약 증가는 인간다운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욕구가 점차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4년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9명이 '의식불명에 빠졌거나 정상적 삶이 어려우면 연명치료를 거부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연명치료가 필요하다고 응답한 노인은 3.9%에 불과했다.
연명치료 거부에 대한 인식은 달라지고 있지만 현실과의 괴리감은 여전하다. 심폐소생술 거부 서약을 했더라도 이내 철회하거나 환자 의사와 관계없이 연명치료를 이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계명대 동산병원 혈액종양내과 송홍섭 교수는 "환자가 의식이 있을 때 연명치료 거부 의사를 밝혀야 하는데, 대다수 환자가 이런 기회를 놓친다"며 "환자가 연명치료를 거부하더라도 보호자가 원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장성현 기자 jacksoul@msnet.co.kr
*DNR(심폐소생술 거부'Do Not Resuscitate)=호흡 정지 상태나 심장 무수축 상태가 되었을 때 전문심폐소생술(ALCS)이나 심폐소생술 따위의 조치를 취하지 않도록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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