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 비문·글씨 '사산비명', 부서진 비석 조각 모아 복원
경주시 외동읍 말방리 숭복사지에 있던 숭복사비가 1천100년 만에 복원됐다.
경주시는 2008년부터 진행된 발굴조사를 통해 비석이 있던 위치를 확인하고, 비문 필사본과 파손된 비편 일부를 토대로 비문을 새기는 각자와 비석을 세우는 입비, 주변 경관 정비 등을 마무리했다고 최근 밝혔다.
숭복사비는 신라 진성여왕 10년(896년) 최치원이 비문을 짓고 글씨를 쓴 비석으로 원래 이름은 '신라 초월산 대숭복사비'((新羅 初月山 大崇福寺碑)다. 지리산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비와 보령 만수산 성주사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 문경 희양산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 등과 함께 최치원 선생이 쓴 '사산비명' 중 하나로 꼽힌다. 다른 3기의 비석은 현재까지 그 자리에 남아 국보로 지정 보호되고 있지만, 이 비석은 일찌감치 파손돼 비석 조각만 발견됐다.
숭복사비는 고승들의 부도탑비인 다른 비석들과 달리 신라 왕실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어 신라 하대의 역사를 밝히는 데 귀중한 자료로 꼽힌다.
비석에는 최치원 선생의 아버지가 견일이며, 원래의 왕릉자리에 있었던 곡사(鵠寺)를 현재의 숭복사터로 옮기고 그 자리에 원성왕릉을 조성했다는 사실이 기록됐다. 또 경문왕 대에 원성왕릉의 능역을 다시 꾸미고 곡사를 중건했으며, 헌강왕이 곡사의 이름을 숭복사로 바꿨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당시 신라와 당나라의 외교 관계 실상도 남아있다.
최양식 경주시장은 "그동안 방치됐던 숭복사비를 중각함으로써 당시 숭복사지와 원성왕릉의 역사'문화적 배경에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더하게 됐다"고 말했다. 경주 이채수 기자 cs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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