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골목길 도시다] <4> 골목길에서 다시 태어나는 근대 건축 (상)

입력 2015-04-28 05:00:00

개발 손길 못미쳐 방치 북성로 옛 건물 '대구 명물' 부활

국내 유일
국내 유일 '공구 박물관'
대구 근대건물 리노베이션 1호 건물
대구 근대건물 리노베이션 1호 건물 '카페 삼덕상회'

만년지계(萬年之計)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 그래도 백년대계(百年大計)는 가능해야 하지 않을까. 교육 분야에 상투적으로 붙는 이 관용어가 절실한 분야가 있다. 건축이다. 건물은 낮에는 사람의 삶을 담고, 밤에는 사람의 꿈을 담는다. 건물을 설계하고 또 짓는 사람들이 고생스러운 노력과 아름다운 상상을 함께 불어넣은 까닭 아닐까. 그런 건물들이 성장이라는 명분과 개발이라는 행위에 의해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허물어지기를 거듭했다.

◆대구 근대건물 리노베이션의 이정표 제시, 카페 삼덕상회와 공구박물관

다행히 대한제국~일제강점기~1960년대 전후의 시기에 근대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근대건물'들 중 적지 않은 수가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골목길에서 살아남았다. 정확히 말하면 골목길이 외면당하고 방치된 덕분이었다. 어쨌든 대구에서는 수년 전부터 골목길 속 근대건물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리노베이션(건물을 헐지 않고 개'보수해 다시 사용하는 것) 작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도현학 영남대 건축학부 교수는 "쓰러져가는 오래된 건물 속에는 도시의 삶이 존재한다. 이를 재생하려 함은 대구 도시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시간의 축적으로 만들어진 도시의 이미지는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아주 중요한 자산이다"고 밝힌 바 있다. 북성로를 중심으로 대구 도심 속 근대건물들이 리노베이션 작업을 거쳐 가게로, 문화 공간으로, 관광 명소로 만들어지고 있는 모습이 그 방증이다.

북성로 '카페 삼덕상회'는 대구의 근대건물 리노베이션 1호 건물이다. 1930년대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건물은 리노베이션 작업을 거쳐 2011년 10월 문을 열었다. 1층은 가게, 2층은 주거지인 전형적인 상가주택이고, 철원상회와 삼덕상회라는 공구점 간판을 잇달아 내걸며 1950년대 이후 북성로 공구골목의 생활사를 담은 곳이다.

카페 삼덕상회는 근대건물을 보존하는 취지뿐 아니라 북성로의 문화 및 관광 콘텐츠를 담는 역할도 표방하고 있다. 문을 연 초기부터 북성로와 대구를 주제로 다양한 전시를 열고 있고, 그림엽서와 공구 모양 볼펜 같은 관광기념품도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카페 삼덕상회를 운영하고 있는 천광호 화가는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북성로에서 그리고 대구에서 무엇을 가져갈 수 있을까, 또한 그들을 다시 오게 할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등에 대해 고민했다. 앞으로 더욱 다양한 기획을 선보이겠다"고 했다.

카페 삼덕상회 다음으로 북성로에서 리노베이션 작업을 거친 국내에서 유일한 '공구박물관'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이곳은 1930년대에 지어져 미곡창고와 식당 등으로 활용된 근대건물이다. 북성로가 '도면만 있으면 탱크도 만들 수 있는 곳'이었음을 증명하는 낡은 미제 탱크 포신 전시물이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곳이다. 이를 포함해 삼덕상회의 전신인 철원상회와 삼오기공 등으로부터 기증받은 공구, 철물, 부품 1천여 점을 전시하며 북성로 공구골목의 역사를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과거의 멋 살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대구와 일본 잇는 민간 문화원으로

삼덕상회와 공구박물관이 의미 있는 리노베이션 작업을 선보인 이후 대구 도심 곳곳 근대건물들이 재발견되고 또 속속 리노베이션 작업에 들어갔다. 단순히 과거의 흔적을 복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미래의 쓰임을 고려한 다채로운 취지를 구현하고 있다.

'북성로 믹스카페'는 1950년대 북성로에 지어진 3층짜리 근대건물을 복원해 지난해 9월 문을 연 복합문화공간이다. 기존 파사드(정면 장식)와 난간 등의 멋을 그대로 살렸다. 이곳 운영자들은 1'2층은 카페 및 강의 장소로, 3층은 전시장으로 활용하며 '건축, 미술, 음악 등 다양한 문화를 혼합(믹스, mix)하겠다'는 신선한 발상도 건물에 녹여내고 있다. 이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작은 뜰과 1910년대에 지어진 적산가옥도 볼 수 있다. 즉, 1910년대부터 지금까지 100여 년에 걸친 흔적들이 기둥과 벽, 창틀 등 건물 구석구석에 뒤섞여 있는 점이 매력이다.

대구 중구 향촌동 수제화 골목에는 북카페 '대구하루'가 있다. 1960년대에 지어진 2층짜리 구두공장 겸 주택 건물을 수리해 올해 2월 문을 연 곳이다. 건축면적 88㎡의 작은 공간이지만 품은 취지는 크다. '민간 일본문화원'을 표방한다.

박승주 대구하루 대표는 "대구하루의 설립 의도는 대구와 일본의 교집합을 찾는 연구 모임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또 대구를 찾는 일본인들에게 가이드 인력을, 주민들에게 일본어 통'번역 인력을 지원하려는 목적도 있다"고 했다. 대구하루는 최근 대구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조성 작업에도 인력을 지원했다.

여기까지가 대구하루가 의도한 역할이었다. 그런데 문을 연 이후 주민들로부터 일본 문화 관련 강좌 문의가 쏟아졌다. 그래서 일본식 종이접기 '오리가미', 일본식 화과자 '사쿠라모치', 일본식 꽃꽂이 '이케바나' 등의 강좌를 개설했다. 또 일본인 주부, 기업체에 파견 온 일본인 직장인, 일본인 원어민 교사, 유학생 등도 문을 두드려 대구 거주 일본인들을 위한 친교의 장 역할도 모색하고 있다.

공간의 이름이 된 '하루'는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박 대표는 "대구에 온 일본인 관광객들이 좋은 하루를 보내길 바라는 뜻이다. 또 하루는 일본어로 계절 '봄'(はる)을 가리킨다. 관광객들에게 대구의 이미지가 봄 같았으면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다. 사실 대구하루 주변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많이 거주했던 곳이다. 이곳은 대구와 일본의 오랜 민간 교류 역사도 담아내고 있는 셈이다.

◆대구 근대건물 리노베이션은 미래진행형

올해 8월 개관을 목표로 대구 중부경찰서 건너편에 조성되고 있는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은 대구 서문로의 명소 근대건물로 떠오를 전망이다. 1920년대에 지어진 2층 목조 건물이 리노베이션 작업을 거쳐 대구경북지역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 사진, 영상 등을 전시하는 장소로 만들어진다. 이름 앞에 붙은 '희움'은 역사관 조성을 추진한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의 브랜드이다.

이곳은 1922년 조선인들이 자본을 모아 설립한 경일은행 소유 건물이었다가 1934년 일본인에게 넘어갔고, 해방 이후 관혼상제 용품을 파는 '창신상회'로 명맥을 이어오다 한동안 폐쇄돼 있었다. 그러다 2010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순악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 역사관 건립 기금으로 써달라며 5천만원을 남기면서 이곳에 역사관을 조성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시민들의 모금이 더해졌고, 위안부 할머니들도 그림을 새긴 팔찌와 가방 등을 판매한 수익금을 보태 건물 매입 및 역사관 조성 공사가 이뤄질 수 있었다.

앞서 사례로 든 북성로 믹스카페, 대구하루,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은 모두 대구 중구청이 지난해 근대건물 리노베이션 지원 사업을 펼친 곳이기도 하다. 중구청은 지난해 근대건물 7곳을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했고, 올해도 신청을 받았다. 앞으로 10여 곳 근대건물에 대한 리노베이션 지원 사업을 진행한다.

글'사진 황희진 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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