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치 않는 이에 위출혈…뼈만 앙상한 남편 한숨만
김정미(가명'42) 씨는 요즘 출근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눈물을 훔친다. 잇몸이 내려앉아 밥 한 숟가락 뜰 수 없는 남편은 앙상하게 뼈만 남은 몸이 돼버렸지만, 가족들 생계 걱정에 매일 출근한다. 몇 개 남지 않은 치아로 죽만 겨우 먹는 남편을 보면 얼른 병원에 달려가 치료를 받게 해주고 싶지만, 당장 월세 낼 돈도 없는 형편이라 답답함뿐이다. "저도, 남편도 아픈 곳이 한두 곳이 아니지만 당장 쓸 돈이 없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 앞에서는 힘든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저도 모르게 자꾸 눈물이 나요."
◆성실하고 착한 남편
젊은 시절 지인의 소개로 만난 정미 씨와 남편. 착하고 성실한 성격 하나만 보고 정미 씨는 결혼을 결심했다. 번듯한 직장을 다니는 남편 덕에 정미 씨는 경리로 일하던 회사를 그만뒀고, 곧 첫째 딸이 태어났다. "사실 부모님이 결혼을 많이 반대하셨어요. 그래도 너무 착한 사람이라 그게 좋았죠. 그런데 그 착한 성격 때문에 고생하게 될 줄은…."
직장에 다니던 남편이 어느 날 혼자서 한숨을 푹푹 쉬는 모습에 정미 씨는 자초지종을 물었다. 알고 보니 친한 친구의 보증을 서준 바람에 수천만원의 빚더미에 앉게 된 것.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정미 씨는 오히려 남편을 다독였다. "형편이 좋은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벌어서 갚으면 되겠지 생각했어요."
정미 씨는 그 후 몇 년간 생활비를 아끼고 시간이 날 때마다 짬짬이 식당 부엌일을 나가면서 빚을 갚아 나갔다. 그 사이 둘째 딸이 태어났고, 막내아들이 생겼을 때쯤엔 빚을 모두 갚았다. 정미 씨 부부는 아이들 셋을 보며 그저 행복하기만 했다. "이제는 고생이 다 끝났구나 안심했어요. 남편이 벌어오는 월급으로 알뜰하게 생활하고 아이들 잘 키워야겠다고 생각했죠."
◆묵묵히 일만 하다가 쓰러진 가장
하지만 사람을 잘 믿는 남편의 성격은 또 한 번 불행을 가져왔다. 막내아들이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회사를 그만두고 지인과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2, 3년간 함께 사업을 했던 지인이 남편의 이름으로 빚만 잔뜩 남긴 채 사라져버린 것. 하지만 당시 정미 씨는 남편의 이런 상황을 전혀 몰랐다. "힘들다는 내색 한 번 안 했으니까요. 큰돈을 벌어다 주진 않았지만 그래도 생활비를 꼬박꼬박 가져다주니 사업이 잘 돌아가나 보다 생각했어요."
지인이 빚을 남기고 도망간 뒤 남편은 홀로 사업체를 운영했지만, 또다시 수천만원의 빚만 남게 됐다. 끊임없는 빚 독촉에 시달리게 됐고, 남편은 일용직 노동일을 해서 다섯 식구가 겨우 먹고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을 가져다줬다. 정미 씨는 다시 식당일을 나갔고, 아이들은 다니던 학원을 모두 그만둬야 했다.
가족의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겨울 남편이 갑자기 쓰러진 것이다. 병원에 실려간 남편의 몸 상태는 흡사 80대 노인 같았다. 잇몸이 내려앉고 치아가 빠져서 남은 이가 8개 정도였고, 위에는 구멍이 나서 출혈이 계속되고 있었다. 간이나 폐의 기능도 크게 떨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돈 걱정 때문에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정미 씨와 남편은 병원을 나섰다. "이가 성치 않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못 먹어서 1년 사이에 10㎏이 넘게 빠졌지만, 치과 치료는 워낙 돈이 많이 든다는 생각에 걱정만 하고 병원에는 못 갔거든요. 그런데 쓰러지고 나서 검사를 해보니 몸이 성한 곳이 없더라고요."
◆지켜주고 싶은 아이들의 꿈
얼마 전 정미 씨 부부는 서로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다. 큰딸이 오랫동안 하고 싶어했던 미술 공부를 그만두고 스스로 취업을 위해 전문계 고등학교를 선택하겠다고 말하면서다. "집이 힘들다는 사실을 말한 적은 없지만 아이는 이미 다 눈치 채고 있었어요. 대견스럽게 빨리 취업해서 도와주겠다는 말을 하는데,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대학에 가서 미술 공부를 하고 싶다는 딸의 꿈만은 지켜주고 싶었는데…."
아픈 남편은 오늘도 앙상한 몸을 이끌고 일을 나선다. 큰딸이 올해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작은딸은 중학생, 막내아들도 벌써 초등학교 3학년이 됐다. 이 아이들을 돌보려면 건강해야 하는데, 치료를 받을 시간도 비용도 없는 남편이다. "치과 치료라도 받았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1천만원이 훌쩍 넘더라고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해요."
김봄이 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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