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견숙의 에세이 산책] 서술형 평가로의 전환, 교육개혁의 시작이다

입력 2015-04-21 05:00:00

"일상생활 속에서 물의 상태 변화 시 출입하는 열에너지를 이용하는 사례를 많이 찾을 수 있다. 그중 한 가지 예를 들고, 그 예가 물의 어떤 상태 변화에 해당하는지 쓰시오."

중학교 과학 '상태변화와 열에너지'와 관련한 서술형 평가 문항이다. 선택형 문항 중심 평가에서 서술형 평가로의 전환은 2010년 이후 활발히 논의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서술형 문항은 주어진 문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구성하고, 이를 글로 표현하는 문항 유형이다. 단편적 지식 암기를 지양하면서 학습자의 창의성, 표현력, 문제해결력 등 고등정신능력을 함양하는 데 목적이 있다.

2009년 대구 남구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주관식과 객관식의 비율을 8대 2로 구성하면서 교과서가 아닌 수업 목표에 부합하는 다른 제시문을 활용하는 한편, 문제 해결 과정을 평가하여 부분 점수를 주는 등 서술형 문항 중심의 평가를 실시했다. 그랬더니 시험 점수가 곤두박질쳐 평균 점수가 60점대에 불과한 학년이 나올 정도였다. 평소 공부하는 것과 다른 걸 시험 쳤다는 학부모의 항의가 빗발쳤다. 이제까지 받아온 100점이 100점짜리 지식을 함양한 것이 아니라는 것, 교과서는 학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자료의 하나라는 것 등을 안내하는 학부모 연수가 끊임없이 열렸고, 제대로 문제를 출제하고, 제대로 평가하기 위한 교사 단위의 연구도 줄기차게 이어졌다. 학생들은 점차 답만 외우는 방식의 학습에서 학습 그 자체의 과정에 집중했고, 교사들 역시 수업에 대한 연구에 매진했다.

평가의 변화가 공교육의 질을 높이게 되면서 사교육 의존도를 떨어뜨리는 효과까지 얻었다.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 결과 이 학교의 학생들이 매년 우수한 성과를 보인 것은 물론이다. 서술형 평가로의 전환이 교육개혁을 일으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12년 교육부의 서술형 평가 제안 이후 이미 많은 현장에서 서술형 평가가 도입되고 있다. 지난해 개교한 대구 새론초등학교처럼 100% 서술 및 논술형으로 학업성취도평가를 실시하는 곳도 생겼다. 평가 개발에 대한 교육청 단위의 연수 역시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으며, 참가 교사들의 관심도 뜨겁다. 올해 대구시교육청에서는 교사들이 서술형 평가 문항을 제대로 개발할 수 있도록 관련 매뉴얼을 제공할 예정이다.

아무리 좋은 방안이라 하더라도 평가의 영향이 지대한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서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이 평가 체제를 바꿀 수는 없는 게 사실이다. 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각종 여건도 고려해서 점진적으로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단순하게 암기하는 수동적인 형태의 학습에서 높은 성취를 얻는 학생들이 인정받는 교육 시스템이 정답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지식정보화사회로 일컬어지는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그렇게 교육받은 아이들에게 어떤 활약을 기대할 수 있을까.

도원초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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