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큐, 맘!" 시각장애있지만 수천 명 돌 본 대구 백합보육원 김선희 씨

입력 2015-04-18 05:00:00

성인이 된 해외 입양인들 찾아와

"기억에도 없는 갓난아기 때 맺은 인연으로 찾아와 눈물을 흘리는 입양인들을 보면 제가 더 고맙고, 눈물 납니다."

대구 중구 남산동에 있는 김선희(70) 씨 집에는 한 달에 한 번씩은 외국에서 손님들이 찾아온다. 바로 미국, 프랑스, 독일 등으로 입양됐던 입양인들로 모두 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에서 운영하던 백합보육원 출신이다.

김 씨는 30여 년 동안 부모를 잃고 이곳에 들어온 갓난아기 수천 명을 정성껏 돌봤고, 성인이 된 입양인들이 기록을 더듬다 김 씨의 존재를 알게 되면 어머니를 찾는 마음으로 찾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김 씨는 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인이다. 시각장애인으로 비장애인도 하기 힘든 보육을 수십 년 동안 해온 것이다.

김 씨는 7살 되던 해인 1951년에 전쟁으로 부모님을 잃고 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에서 운영하는 백합보육원에 들어갔다. 보육원 관계자에 따르면 김 씨는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가 있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신앙이 깊고 성격도 활발했으며 수녀들을 잘 따랐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보육원에서 나와야 하는 나이인 13세 때부터 이곳 수녀들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고, 91년 보육원이 없어질 때까지 갓난아기들을 돌보는 데 힘을 보탰다.

희미한 빛조차 감지할 수 없는 전맹인 김 씨에게 아기를 돌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입으로 착각해 옷 속으로 분유를 넣는 바람에 아기들의 옷을 젖게도 했고, 분유와 물 양을 못 맞춰 하루에도 분유를 몇 병이나 버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김 씨의 시행착오는 오래가지 않았고, 오히려 보육원의 다른 직원들이 김 씨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일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수십 년 동안 아기들을 돌보다 보니 이유식 만들기, 목욕, 아기 옷 빨래 등 육아에 있어서 김 씨를 따라갈 사람이 없게 된 것이다.

"갓난아기는 다 비슷할 것 같아도 각자 특징이 있습니다. 울음소리 외에도 두상, 머리숱, 이마 모양 등 손끝으로 아기들을 구분하는 저만의 방법이 있었습니다."

34년간 수천 명의 아기들이 김 씨의 손을 거쳐 갔고, 입양인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친정을 찾듯 김 씨를 찾아오고 있다.

김데레사 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 수녀는 "입양인들이 수녀원이 보관하고 있는 아동카드에 '김선희 루실라 대세'(가톨릭에서 사제를 데려올 동안 세례받을 사람이 죽을 위험에 있을 때 평신도가 주는 세례)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면 이분을 꼭 만나보고 싶어한다"며 "입양인에게 '옛날 기저귀를 갈아주고 보살펴 주신 분'이라고 소개하면 다들 어머니를 만난 듯 눈물을 흘리며 감사해 한다"고 했다.

"그들을 돌볼 수 있어 제가 더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지금 그들을 위해 제가 할 일은 부모님 없는 슬픔을 잘 견뎌낼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뿐이겠지요."

허현정 기자 hhj224@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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