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상 (1966~ )
(……)
밥 때가 되면 밥물이 끓듯, 슬픔도 끓을 것인데
국수를 먹을 때면, 슬픔의 다발이
그대로 남아 젓가락 위에 걸려 있을 것인데,
살아있다는 것이 이리도 욕되고
먹는 일이 짐승처럼 느껴져도 되는 것일까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일까,
시도 때도 없이 불어나는 이 노여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직도 물에 퉁퉁 불어 선실 어디에
짐짝처럼 내버려져 있을 너를 생각하며
살아남은 우리는 퉁퉁 불은
눈이나 비비고 또 비빌 것이다
노란리본이야 가는 봄바람에 나부끼면 그만이지
늦봄 햇살, 토담의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는 너를 어찌 볼까
모진 게 목숨이라더니 비오는 새벽에
나는 또 밥을 안친다
이 밥 냄새를 맡고 현관문을 열며
니가 들어왔으면 좋겠다
(……)
수정 같은 맑은 웃음을 짓던 내 아이들아,
이 땅에선 다시는 만나지 말자
함께 손잡고 하늘 곳곳 별들과 별들 사이로
수학여행 잘 다녀오렴 니 별자리 이쁜 이름도 지어놓고
깔깔거리며 먼저 가서 놀고 있으렴
(부분. 『사랑의 뼈들』. 삶창. 2015)
"나는 또 밥을 안친다/ 이 밥 냄새를 맡고 현관문을 열며/ 니가 들어왔으면 좋겠다"에 다시 턱, 걸린다. 다시 눈물이 흐른다. 그 아이들 때문이 아니라 내 아이들 때문이다. 내 아이들 때문에 아이들을 잃은 그들의 슬픔이 이해가 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제 이 불편함을 그만두자고 한다. 불편하기는 하겠다…. 그러나 우리의 이 작은 불편함을 아직도 슬픔과 분노로 턱밑까지 숨이 차오르는 그 아비 어미들을 위해 한쪽으로 잠시 밀어줘도 되지 않을까? 우리는 아이들과 그 사람들의 죽음을 생중계로 보고 있었다. 4월 16일, 꼭 1년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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