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의 생각] 암, 의학 그리고 자연

입력 2015-04-16 05:00:00

한상갑 기자
한상갑 기자

쉼을 모르는 세포. 바로 암세포의 치명적인 속성이다. 이 결정적 결함 때문에 암세포는 무한증식을 거듭해 마침내 환자를 파멸에 이르게 한다.

암세포를 흔히 '미친 세포'라고 하는데 이는 유전자 속에 'p53'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이 p53 DNA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암세포는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다.

얼마 전 미국에서 망가진 p53 유전자를 복원하는 실험이 성공을 거둔 적이 있다. 실험관에 있던 암종양에 p53을 투입하자 암세포는 분열을 멈추었던 것이다. 실험관에 형체도 없이 괴사된 암세포 잔해를 보고 의학계는 흥분에 들떴다. 이 유전자를 암 치료에 적용하면 고장 난 암세포의 회로도를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실험으로 들어갔을 때 이 유전자는 전혀 치료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실험관 속 상황과 실제 암환자의 몸 속 환경은 너무 달랐던 것이다. 즉 실험실은 의사가 자신들의 실험 목적을 위해 설정한 인위적인 공간이었다. 거기엔 화(火), 성냄, 섭생 같은 외부 요소가 전혀 개입될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반면에 실험 대상이었던 암환자들은 수십 년 동안 오염된 환경, 식습관, 스트레스에 노출되었고 그로 인해 신체는 물론 정신까지 망가진 상태였다. 이 치료 가설은 결국 휴지가 되었다.

우리는 가끔 '획기적 치료법' 개발이니 '암세포 메커니즘 규명' 등 떠들썩한 뉴스들과 곧잘 접한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동물실험이나 임상실험 벽에 부딪혀 수없이 폐기되는 현상을 자주 목격한다. 모두 실험실과 인체와의 간극을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타민A의 추출물 베타카로틴이 정제 알약으로 나왔을 때도 학계의 관심은 대단했다. 호박이나 배, 당근 같은 노랑, 주황색 과채류에 많이 함유된 비타민A는 항산화 효과가 뛰어나 '천연 항암제'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였다.

음식으로는 섭취량에 한계가 있어 복용량에 제약을 받았던 천연항암제를 무제한으로 섭취할 수 있게 되면 거기에 비례해서 환자의 화복 속도도 비례할 것으로 추측했던 것이다.

그러나 경구(經口) 투입된 비타민A 캡슐은 환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남용했을 때 부작용이 세계 각국에서 보고되었다. 핀란드에서는 대량으로 알약을 섭취하던 환자군에서 폐암 발생이 훨씬 높아져 '핀란드 쇼크'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결국 환자나 일반인에게 가장 이상적인 영양 섭취는 저작(咀嚼)운동을 통한 자연 섭취가 최상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이 두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시사한다. 인류의 어떤 인위(人爲)는 자연을 거스를 수 없으며 어떤 의술도 자연의 섭리 속에서 제한된다는 사실이다.

현대의 첨단 의학이 총동원되는 암병동에서도 이 상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