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40대 중반 주부며, 고등학생인 딸과 아들이 있습니다. 결혼 당시 남편은 직장이 없었지만 체격이 듬직하고 마음이 착해 보여서,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에 결혼을 했습니다. 순진한 생각이었습니다. 결혼생활 20년간 제가 혼자 벌어서 살다 보니 지치고 화가 납니다. 남편은 직장생활이라고는 친척이 경영하는 가게에 3년 다닌 것이 전부입니다.
마음이 착한 것도 잠깐이었습니다. 남편은 피해의식과 열등감으로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일상생활 간섭은 거의 의처증 수준입니다. 하루 종일 집에서 빈둥거리면서, 남편 대접을 제대로 안 한다는 불평을 늘어놓을 뿐 아니라 심지어 저의 퇴근시간을 따지면서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한 번은 죽을 각오로 덤볐습니다. 폭력에 못 이겨 칼을 들고 '나 죽여라!'라며 대들었는데, 그 후로 겁을 먹었는지 저에게는 폭력을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들에게 '공부가 왜 이따위냐!' '남들 다 가는 인문계도 못 가는 바보!' '아버지한테 대하는 태도가 왜 그리 불손하냐!' 등 인격모독에 가까운 폭언에다 폭력까지 휘두릅니다. 이 때문에 아들은 아버지가 보기 싫다며 가출도 여러 번 했으며, 학교생활 부적응으로 문제를 자주 일으킵니다. 남편은 아들의 이러한 행동을 트집 잡아서, 폭력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고 합니다. 아들은 저에게 이혼하지 않는다고 원망합니다.
제가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남편은 열 살 정도에 어머니가 가출한 후 새엄마 아래서 기를 못 펴고 살아왔다며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불쌍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착한 사람 같아서 성급한 결혼을 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무능하고 폭력적이라서 어머니가 평생 자식 위해 고생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습니다. 형제'자매가 많은 가난한 집에서 셋째로 태어나 부모 사랑을 크게 받지 못하고 자랐지만 억척같이 살았습니다. 대학도 제가 벌어서 나왔기 때문에 사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부관계가 이 모양이니 어찌 아이들이 제대로 자랄 수가 있겠습니까? 자식은 제가 책임지지만 이 지긋지긋한 남편은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해법=생활력이 강하고, 책임감이 강한 귀하가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착해 보이는 남자에게 한눈에 반해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며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느라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있어 무척 안쓰럽고 안타깝습니다. 남편은 지금까지 어린아이처럼 아내에게 의존하며 살아왔고, 자신의 책임은 인식도 못한 채 아내에게 기대한 만큼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푸는 역기능적인 행동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남편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 귀하의 모성애와 강한 책임감이 현재 상황을 연출한 것입니다. '왕책임가 옆에는 무책임가'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귀하가 가정을 씩씩하게 잘 꾸려가니까, 남편은 큰 불편 없이 일하지 않고 살 수 있었습니다.
이제나저제나 남편이 가정을 이끌어 가기를 바라며, 헌신하고 참기만 하였습니다. 아내의 속마음을 모르는 애정결핍 남편은 아내가 속 끓이며 생존투쟁하는 모습은 안중에 없고, 자신에게 애정 어린 서비스가 없다는 아내에 대한 서운함을 약한 아들에게 분노를 표출하며 터뜨리고 있습니다.
자식도 아닌 남편을 인생 끝까지 모시고 살 아내는 없습니다. 과거 한평생 희생하며 살아온 어머니 모습과 자신의 결혼생활을 비교해 보십시오. 이제부터는 함께 하는 방법을 찾아야 원만한 가정이 끝까지 유지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첫째, 지금까지 억척같이 노력하며 가정을 이끌어온 자신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하셔야 합니다. 둘째,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며 남편과 역할 분담을 분명하게 하고 각자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합니다. 즉, 가사노동과 가정경제를 능력에 맞게 협상하여 분담하고, 남편도 자신의 존재감을 갖도록 기회를 주며 함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셋째, 남편을 전문가에게 의뢰하고 부부간에 소통하는 기술을 배워 정서적 교류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능력 있는 귀하께서 혼자 모든 책임을 지려는 대신 남편과 함께하는 방법을 터득하면 또 다른 기쁨을 느끼며 가정을 잘 이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당신은 분명 지혜로운 선택을 할 거라 믿습니다. 파이팅!
본 사례는 자신도 모르게 가정폭력을 다음 세대에 전수하는 아주 위험한 상황이다. 본 사례의 아내도 무능하고 폭력적인 아버지 아래에서 고생하는 어머니를 보며 자랐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 같은 남편은 절대 만나지 말아야지'라고 결심했지만 너무나 닮은꼴의 남편을 만났다고 한숨을 쉰다.
처음에는 자신의 운명이라 받아들이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일정기간을 헌신하며 살아가지만 부부는 서로 의지하고 주고받는 균형이 깨어지면 인생 끝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대처 방안은 먼저, 아내가 지금까지 가정에 헌신해 온 것이 헛되지 않음을 충분히 지지해 준다. 다음은, 자신의 성장과정과 부모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자신의 현재 모습을 통찰하게 하여 자신의 과도한 책임감으로 남편이 무책임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인식시킨다. 끝으로, 남편을 전문가에게 안내하여 자기통찰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착한(?) 남편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구체적 협상 등을 위한 부부 상담을 받아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악순환과 세대전수를 끊도록 해야 한다.
박경규 (사)영남가정폭력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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