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미묘한 상황이다. 한 기업인이 죽고 나니 세상이 시끄럽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정말 억울하다고 했다. 누구나 죽음을 접하면 가슴이 아파진다. 그런데 슬퍼할 수도, 분노할 수도 없다. 한 인간을 죽음으로 몰고 간 정황이 우리를 우울하게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를 이용하고 나 몰라라고 했던 정치인들의 심보가 정말 괘씸하지만, 그것도 전부가 아니다.
그렇게 부조리한 일을 그에게 강권한 이는 아무도 없다. 스스로 뛰어들어 자초한 일이다. 자신과 가족, 회사를 위해 불가피하게 선택한 일이 아니던가. 건설업계의 부조리한 관행은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1980, 90년대 대구에 걸출한 기업인 두 명이 있었다. 둘 다 건설업계의 신화였고, 한때 재계 서열 30위권에 오를 정도로 대단했다. 한 분은 돌아가셨고 한 분은 힘들게 살고 계신다고 한다. 그 두 사람이 건재했으면 대구 건설업계가 이런 모습으로 있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많은 것을 보면 그만큼 아쉬움이 크다는 얘기일 것이다.
근데 두 사람 모두 만년에 끔찍한 감옥살이를 경험했다. 배임, 횡령 등 건설업계에서 관행처럼 돼 있는 죄목이었다. 감옥에 가면서 둘 다 억울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측근들에게 '정권에 밉보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필자는 두 분의 속사정을 정확히 모른다. 줄을 잘못 섰든지, 누구에게 미운털이 박혔든지 그것은 알 수 없지만 둘 다 '정권 탓'을 하며 무대에서 퇴장한 것만은 분명하다. 벌써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는데 무엇 하나 바뀌지 않고 오늘날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으니 과연 누구의 탓인가.
대구의 일은 과거형이지만 포항에는 현재 진행형이 있다. MB 정권이 들어서고 포스코 회장이 바뀌니 매출이 몇 배 뛴 건설회사가 있다. 정부 일을 따기도 했지만 대부분 일감은 포스코에서 나왔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보니 그 회사 오너의 로비 능력 때문이었다.
전임 포스코 회장과 가깝고 경영진 개개인과 친하게 지내다 보니 포스코가 발주하는 공사는 우선순위로 수주했다. 시공 경험까지 있으니 수의계약만으로 미래가 보장되는 듯했다.
최근 정부가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하면서 검찰의 타깃이 되고 있다. 그 회사는 억울하다고 했다. 비자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 사정 당국이 자신들을 잘못 보고 있다고 해명했다. 억울한 구석이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런 시련을 얼렁뚱땅 넘기려고 하면 그 회사의 미래는 어디에서도 보장받을 수 없지 않을까 싶다.
예로부터 건설업계는 정치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정치인들에게 잘못 보이는 순간 건설사는 그날로 문을 닫든지, 딴 일을 찾아야 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돼 있다.
현재 재계 서열 20위권으로 급성장한 한 건설사의 신화는 호남정권 출범으로부터 비롯됐다는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 당시 전국 임대주택의 80%를 짓고 정부 지원금의 절반 이상을 독식하면서 몸집을 불려나가 오늘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럴진대, 회사를 키우고 싶은 건설사 오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정치인과 관료들에게 돈 대주고 술'밥 사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일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성완종'처럼 여러 정권을 거치며 줄타기를 해온 기업인들이 수백 명 있다고 해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뜯어고치지 않으면 제2, 제3의 성완종이 계속 등장할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에서 이런 불합리한 구조를 모르고 있었을까. 알면서도 방관하고, 나아가 이를 이용해온 것이 현실이다. 진정으로 성완종 전 회장의 죽음을 애도하려면 비정상적이고 불합리한 건설업계의 구조와 환경을 바꾸는 것이 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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