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사만어] 물, 신의 한 수

입력 2015-04-15 05:00:00

흔한 게 물이라고들 한다. 물은 맑고 부드러운 속성 때문에 유순한 사람을 비하하는 용어로 쓰이기도 한다. 수능이 쉽게 출제될 때마다 '물수능'이란 말이 어김없이 등장하고, 어느 전직 대통령은 이름 앞에 '물' 자가 별명처럼 따라붙는다.

물은 과연 흔하고 물러터진 물질일까. 물의 성질을 곰곰이 짚어본다면 그런 말은 못할 것이다. 지구 표면의 70%는 바닷물로 덮여 있지만 그 평균 수심은 3.8㎞로 지구 지름의 0.03%밖에 안 된다. 지구를 사람 얼굴로 치자면 로션을 바른 정도의 두께에 불과한 셈이다. 그나마 지구 전체의 물 가운데 바닷물이 97.4%를 차지해 민물 비중은 3%가 채 안 된다. 민물 중에서도 빙하가 1.74%, 지하수가 0.76%여서 하천'호수에 담긴 물은 전체 총량의 0.007%뿐이다.

물은 강력한 물질이다. 물은 지구 상의 모든 산과 계곡을 깎아냈다. 초고압으로 압축해 분사한 물은 강철도 잘라낸다. 독한 구석도 있어서 쇠를 부식시킨다. 또한 중독성(?)으로 치자면 마약보다 훨씬 더하다. 생명체는 모두 물에 '중독'되어 있어서, 물 공급이 단 며칠만 중단돼도 대부분이 버틸 수 없다.

물은 지구가 생명체를 보듬을 수 있게 기온을 유지시킨다. 적도 부근 멕시코만에서 태양열을 받아 데워진 물은 고위도 쪽으로 흘러가는데, 하루에 옮겨지는 열량 규모만 해도 인간이 100년간 채굴한 석탄 모두를 태운 것보다 두 배 크다고 한다.

물은 마법도 부린다. 액체는 온도가 내려가면 부피가 줄어드는데, 유일하게 물만은 얼음이 되는 순간 부피가 액체 때보다 커진다. 이 같은 조화가 없었다면 얼음이 물에 뜨지 않아 바다와 호수는 바닥부터 얼었을 것이고 지구에는 생명체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물을 가리켜 "생명체를 만들기 위한 신의 절묘한 한 수"라고까지 표현했다.

'2015 세계물포럼'이 대구경북에서 열리고 있다. 세계물포럼은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대구경북에서 열린 여느 국제이벤트보다 더 중요한 행사일 수 있다. 우선 잘 치러내는 게 급선무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포럼 개최 이후다. 그 인적'물적 인프라를 응집해 대구경북을 세계적 물산업 허브로 육성해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이번 세계물포럼은 막대한 혈세를 들인 또 하나의 전시성 이벤트로 기억될지 모른다. '포스트 물포럼'에 대해 기대 반 걱정 반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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