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따라 오스트리아 빈에 정착한 후 살펴보니 빈에 베토벤의 유적지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베토벤은 오스트리아에서만 80차례 내지는 100차례 이사했다. 그의 이사 횟수를 모두 가늠하기는 어렵다. 하여튼 베토벤은 빈에 거주한 약 35년간 1년에 평균 서너 번은 이사를 다닌 셈이다.
베토벤은 17세 때 모차르트의 명성을 따라 자신도 유명해지기 위해 독일 본에서 오스트리아 빈으로 왔다. 이때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모차르트는 빈의 중심 슈테판 성당 뒤편 돔가세(Domgasse, 대성당골목) 5번지에 살았다. '피가로하우스'라는 곳이다. '피가로의 결혼식' 오페라가 만들어진 곳으로 유명하다. 모차르트는 이곳에서 3년간 머물며 그의 일생 중 가장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당시 하이든이 베토벤을 데리고 왔을 때 모차르트는 그의 연주를 듣고 "이 젊은이를 주목하라. 그는 이 세상에 이름을 떨칠 것이다"라고 했다.
이후 베토벤은 왕성한 음악 활동을 했지만 성격이 고집스럽고 괴팍해서 집주인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 이유로 베토벤은 자주 이사를 다녀야 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파스콸리티 백작이라는 팬이 있었다. 그는 베토벤에게 무상으로 지금의 빈 대학교 건너편 5층 건물 전 층을 빌려줬다. 베토벤이 연주 여행에서 돌아와도 언제든지 집을 쓸 수 있게 배려했다. 그 기간이 무려 8년(1804~1808년 및 1810~1815년까지)이었다. 빈에서 베토벤이 가장 오래 산 집이다. 이곳에서 베토벤은 5번 운명교향곡과 교향곡 4'7'8번 등 4편의 교향곡을 썼다. 그러나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의 집'에서 쓴 전원교향곡과 합창교향곡, 에로이카하우스에서 쓴 영웅교향곡 등은 고작 1년 동안 서너 집을 이사하면서 쓴 곡들이다. 8년 동안 살았던 파스콸리티 하우스에서보다 1년에 서너 번 이삿짐을 꾸리며 쓴 교향곡이 질량적으로도 더 뛰어난 것을 보더라도 '떠돌이'의 생활이 더욱 값져 보인다.
베토벤은 집주인과의 불화 때문만이 아니라 자발적인 이사와 여행으로 새로운 자극을 얻기 위해 떠돌이를 자처했을 것이다. 그런 떠돌이 생활이 가능했던 까닭이 있다. 오스트리아의 집 임대 구조가 매우 안정적이어서였다. 평생 무기한 임대가 많았고, 임차료 상승 또한 미미했다.
늘 엄청난 이삿짐을 꾸려야 했던 베토벤을 떠올리며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만일 베토벤이 한국에 살며 1년에 두세 번씩 이사를 다닐 처지였다면? 기준 없는 임차료 부담으로 급기야 땡 빚을 내서라도 집부터 사지 않았을까? 요즘처럼 저금리라면 아마 베토벤도 집을 사서 '붙박이' 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만일 그랬다면 그의 음악은 어떻게 변했을까? 베토벤이 오스트리아에서 산 것은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붙박이' 베토벤보다는 '떠돌이' 베토벤이 음악을 더욱 성숙시켰다고 믿는다.
군위체험학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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