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해의 엔터 인사이트] 1990년대 아이콘 김희선의 성공적인 변신

입력 2015-04-10 05:00:00

39살 앵그리맘 '스타의 귀환'

#욕설·주먹질…자연스런 연기, 연기력 논란 한방에 '훅'

1990년대 톱스타 김희선이 2015년 안방극장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MBC 수목극 '앵그리맘'에서 타이틀롤을 맡아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중. 한때 '좀 놀았던' 주부가 딸의 안전을 위해 고등학생으로 위장한 채 학교로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드라마다. 거침없는 욕설에 액션 및 코믹연기까지 소화하며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방송 관계자와 평단, 시청자 반응 역시 호평 일색. 몸 사리지 않는 김희선의 연기가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는 평가다. 매번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연기력 논란'도 단번에 날려버렸다. 말 그대로 '스타의 귀환'이다.

◆교복 입고 물 만난 김희선

'앵그리맘'의 김희선은 말 그대로 '물 만난 고기'다. 맡은 역할은 학창시절 알아주는 '일진'으로 군림하다 성인이 돼 착실하게 살고 있는 중년의 미혼모 조강자다. 어느 날 딸이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 배후세력과 근본적인 문제를 근절하기 위해 고교생으로 위장해 등교를 시작한다.

일단, 이 드라마는 중년의 나이가 된 김희선에게 교복을 입혀 시선을 집중시킨다. 창창한 10대 또는 20대 후배들 틈에 섞여 있는 39세 대선배 김희선은 '앵그리맘'이 제공하는 최대의 '볼거리'다.

단, 이 '볼거리' 안에서 김희선의 '미모'는 기존에 보여주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다. 과거 빛나던 시절에 드러냈던 외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는 자연미다. '대한민국 비주얼 여배우의 대표'로 불렸던 김희선의 망가짐, 여기에 능청스러운 연기가 더해져 드라마의 인기를 견인하는 주요인이 됐다. '예쁜 척'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욕설을 내뱉으며 소리 지르는 모습이 웃음을 주고 통쾌함까지 자아낸다. 익숙한 듯 주먹질을 하며 액션연기를 하는가 하면 절절한 감정연기로 코끝을 찡하게 만들기도 한다. '유쾌발랄'이 아니면 '청순가련'을 표방하며 한국 드라마의 전형적인 여주인공 캐릭터를 연기했던 과거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지난 시절 '안방극장의 인형'으로 인기를 끌었다면, 이젠 노련하고 숙련된 '베테랑'의 면모가 드러나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게 만든다.

만약 여고생으로 분한 김희선의 코믹연기만 부각시켰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났을 터. 하지만 '앵그리맘'은 통통 튀고 가벼운 소재 안에서 학원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부각시킨다. 그러면서 현시대 10대들이 처한 안타까운 상황을 타파하고자 나선 '행동파 기존세대'로 김희선을 내세운다. 무거운 주제를 웃음기로 포장해 몰입도를 높이고 한층 더 쉽게 전달하고 있는 셈이다. 영리한 연출이다.

멜로드라마의 여주인공을 도맡았던 김희선이 '여고생으로 분장한 억척스러운 아줌마'로 변신한다는 건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 마찬가지로 제작진 입장에서도 김희선에게 주인공 캐릭터를 건네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매번 '연기력 논란'에 휩싸이고 흥행 성적도 신통치 않았던 배우라 부담이 컸을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김희선과 손을 맞잡은 건 '예쁜 김희선'의 이면을 꺼내 보여주겠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일 것. 역시 영리한 선택이다. '앵그리맘'의 부름에 응한 김희선의 결심 역시 제대로 통했다. 이제야 김희선이란 여배우가 시청자들과 공감할 수 있게 됐다.

◆톱스타 20대, 슬럼프 30대

1990년대 중반부터 후반에 이르기까지 김희선은 자타공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톱스타였다. '김희선 닮았다'는 말은 여성들의 미모를 극찬하는 수식어로 통했고, 김희선을 캐스팅하는 드라마는 일단 고정 시청자층을 확보하고 흥행 성공을 노릴 수 있었다. 실제로 1993년 CF로 연예계에 데뷔한 후부터 김희선의 앞길은 탄탄대로였다. '생방송 TV가요'에 최연소 진행자로 발탁돼 배철수와 호흡을 맞추며 눈길을 끌었고, 이듬해에 당시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아역스타 출신 이민우의 상대역으로 추석특집극 '춘향전'에 캐스팅됐다. 그리고 1995년 '바람의 아들'에 이어 '목욕탕집 남자들'의 연이은 성공으로 본격적인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다. 그 뒤로 이어진 '프로포즈' '세상 끝까지' '토마토' '미스터Q' '해바라기' 등 드라마의 히트 퍼레이드는 김희선을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게 만들었다. '미스터 Q'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1998년에는 20세를 갓 넘긴 나이로 최연소 연기대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톱스타 김희선의 전성기다.

하지만 안방극장에서 기록한 높은 타율이 스크린에서는 쉽게 먹혀들지 않았다. 드라마 시장에서 톱스타로 떠오르던 1990년대에도 '패자부활전' '카라' '자귀모' 등의 영화에 출연했다가 처참한 실패를 맛봤다. 그리고 2000년에 발표한 영화 '비천무'로 흥행 참패의 쓴맛뿐 아니라 연기력 논란에 휩싸여 곤욕을 치렀다. 이때부터 김희선의 하향세가 시작됐다.

'비천무'로 치명타를 입은 후 이듬해 내놓은 영화 '와니와 준하'는 다행히도 완성도에 대한 호평을 끌어냈다. 하지만 역시 흥행에는 실패했고 김희선의 연기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엇갈렸다. 그리고 2003년 또 한 편의 멜로영화 '화성으로 간 사나이'로 재기를 노렸지만 이 작품 역시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충무로에서 패배를 맛본 김희선은 2003년 방송계로 돌아와 드라마 '요조숙녀'를 내놨다. 하지만 성과는 '김희선의 드라마'라는 이름값에 미치지 못했다. 2004년 드라마 '슬픈연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2005년 성룡과 함께 발표한 중국영화 '신화-진시황릉의 비밀'도 김희선의 인기를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캐릭터를 바꿔도 변함없는 밋밋한 연기 패턴에 대한 지적이 따라왔을 뿐이었다. 그러고는 2007년 결혼식 후 한동안 활동을 중단했다.

이쯤 되면 '스타'라는 수식어도 무색해질 법하다. 하지만 다행히도 2014년 드라마 '참 좋은 시절'을 만나면서 김희선의 앞길도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방송 초반에는 김희선의 사투리 연기에 대해 '어색하다'는 혹평이 이어졌지만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몰입도 높은 연기를 선보이며 논란을 잠재웠다.

'앵그리맘'의 성공은 더 큰 의미가 있다. 기존의 이미지가 만들어놓은 범위를 벗어나지 못해 애를 먹었던 30대의 김희선이 중년에 이르러 연기자로 활동 영역 확장을 꾀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 오랜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던 건 결국 처음 보는 이를 당황시킬 정도의 자신감과 긍정적인 성격을 가진 김희선이었기에 가능했다.

(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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