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바뀌고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주변에서 열리는 행사의 모습이다. 가슴에 꽃을 단 정치인과 시장'군수'구청장 등 자치단체장, 기관장, 지방의원, 유지들이 줄지어 맨 앞자리에 마련된 'VIP석'을 차지한다. 이들은 행사의 시작과 함께 '내빈'으로서 한 명 한 명씩 소개를 받고는 또 차례로 축사나 격려사를 하기 위해 단상에 오른다. 서너 명이 할 때도 있지만 예닐곱 명씩 할 때도 있다. 인사말만 하는 데도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씩 소요되기는 예사다.
포항시와 영천시가 이런 구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솔선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포항시는 국경일 기념행사와 전국적 행사, 시정 관련 업무협약, 정책간담회, 지역 대표 축제 등에만 시장이 참석하고 다른 행사는 부시장이나 실'국장이 참석하기로 했다. 영천시는 행사장에 귀빈석을 없애고 주요 참석자는 영상으로 소개하고 축하 화환도 두지 않기로 했다. 특히 노인과 어린이, 장애인이 참석하는 행사는 진행 시간을 10분 안에 마치도록 했다. 최근 지역의 민간사회단체들도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기관단체장들의 행사 초청을 줄이기로 하는 등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소식이다.(매일신문 4월 1일 자) 어떤 아름다운 봄꽃 소식보다도 반가운 뉴스다.
포항시장은 지난해 658건의 행사에 참석했다고 하니 1년 내내 하루 두세 군데 행사에 얼굴을 낸 셈이다. 하루 두세 군데 행사에 참석하려면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서너 시간 정도는 쉽게 지나가고 만다. 그것도 오전 오후로 분산되고 장소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면 하루를 행사로 시작해 행사로 마무리하게 된다.
행사에 참석한 주민들 역시 단체장과는 다른 이유지만 불편을 겪고 짜증이 나기는 마찬가지다. 내빈 소개와 함께 축사와 격려사가 너무나 길고 지루해 땡볕에서 또는 바람 부는 노천에서 참아내기가 여간 힘들지 않기 때문이다.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행사냐?'며 다시는 행사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날을 세운다. 단상에 오른 이가 무슨 소리를 했는지는 아무런 기억조차도 없다. 선출직들의 얼굴 내기를 위한 유세장이나 선전장과 다름없다고 비난한다.
모든 것이 첨단으로 변화하고 있는 이른바 스마트 시대를 맞아 우리 주변의 수많은 행사도 이제는 형식이나 내용 모든 면에서 스마트한 변신을 해야만 한다. 확 바꿔야 한다. 자치단체장은 행사에 참석하는 것보다 주요 정책의 판단이나 현안 해결 그리고 창조적 미래 설계가 훨씬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이해관계자들 간의 조정이나 설득, 대형 프로젝트의 개발과 투자 유치, 홍보 등을 위해서도 머리를 싸매고 치열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행사에 초청되거나 참석한 주민들 역시 이제는 더 이상 들러리가 되거나 박수부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주인이다. 그들이 행사의 중심이 되고 주인공이 되도록 의전을 획기적으로 바꾸고 새롭게 해야 한다.
자치단체장의 업무가 행사 참석인 양 착각이 들 정도로 매일 행사로 시작해 행사로 끝난다면 결국 주민과 지역의 손해로 돌아온다. 또한 행사가 주민이나 주최 측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일부 참석한 '높은 사람' 또는 얼굴 내기 좋아하는 '내빈'을 위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그런 행사는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내빈이 없고 내빈 소개가 없는 행사, 축사와 격려사가 없는 행사, 한 번 더 참석하고 싶은 뜻깊고 재미있는 행사는 과연 불가능한가? 포항시와 영천시의 변화를 다 함께 기대하고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때는 바로 지금이다. 문제는 과연 얼마나 실천하느냐 또 얼마나 확산시켜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박영석/계명대 언론광고학부 초빙교수·전 대구MBC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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