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홈플러스 2호점 입점 논란…'상권보호 선언'후 개점 추진에 상인들 뿔나

입력 2015-04-08 05:00:00

"인구 30만 이하 신규점 자제" 홈플러스측 스스로 약속 파기

경주 도
경주 도'소매연합회 회원 등 경주지역 상인들이 홈플러스 충효점 입점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경주지역 상인들이 홈플러스 2호점 입점을 반대하며 시청 앞에서 권기대회를 열고 있다.
경주지역 상인들이 홈플러스 2호점 입점을 반대하며 시청 앞에서 권기대회를 열고 있다.

경주지역 홈플러스 2호점(이하 충효점) 입점을 두고 논란이 거세다. 대형마트가 들어설 때마다 지역상권의 반발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 경주 홈플러스 사태는 경주시가 대형마트 입점을 허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데다 대형마트의 도덕성 문제까지 겹치는 등 갖가지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홈플러스의 도덕성 문제?

홈플러스 충효점은 건립 발표 초기, 대형마트 체인의 도덕성 논란을 불러왔다. 대형마트 체인들은 충효점 건립 발표가 난 2012년 11월 자율휴무제 도입과 함께 인구 30만 이하 중소도시의 신규 출점을 자제하기로 자체 합의했다. 지역상권 보호를 위한 자체 협약 마련을 선언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홈플러스 측에서 경주 충효점 개점을 추진, 자신들의 약속을 스스로 파기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에 대해 홈플러스 측은 "충효점 건립 계획은 협약이 이뤄지기 전에 이미 수립됐던 것으로 해당 사항이 아니며 상생협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필요 시 모든 것을 협의하겠다"고 해명에 나섰다.

충효점 예정부지는 전통상점가인 충효상점가와 직경 1㎞ 안에 인접해 있어 경주시가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대규모 점포 및 준대규모 점포의 입점을 제한할 수 있는 곳이다.

◆거세지는 갈등

경주지역 상인들은 홈플러스 충효점 건립 계획이 발표된 지 약 보름 후 '경주 도'소매연합회'를 창립하고 홈플러스 입점을 반대하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특히 성동시장과 중앙시장 등 전통시장 상인들은 당시 '대형마트 입점 반대 투쟁위원회'를 구성한 뒤 시청과 경주역 앞에서 대형마트 입점 반대 궐기대회를 열었다.

홈플러스 충효점 건립에 반대의 목소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예정부지 지주들과 일부 시민들로 구성된 경주시민자조모임 150여 명은 지난해 12월 시 청사 앞에서 대형마트 입점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소수 상인들의 반대로 다수 시민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경주시의 갈팡질팡 행정

이러한 과정에서 경주시의 갈팡질팡 행정은 주민들의 갈등에 불을 지피는 촉매제가 됐다.

당초 경주시는 홈플러스 입점에 대해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경주시 건축위원회는 지난해 6월 ㈜밸류인사이트리테일 측에 조건부 건축허가를 가결했지만, 말 그대로 건축허가일 뿐 한동안 홈플러스 충효점 예정부지 내 12%를 차지하고 있는 시유지 1천128㎡의 매각을 허가하지 않았다.

그러던 경주시가 지난달 12일 갑작스레 시정조정위원회를 열고 홈플러스 충효점 예정부지 내 시유지 매각을 결정했다. '시유지의 보존 가치가 적고 법적 하자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사업자 측의) 매수 신청을 계속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사실상 대형마트 입점을 허용하려는 행동으로 비쳤다. 이에 상인들은 시청에 몰려가 '회의록 공개' 등을 요구하며 공무원, 경찰 등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경주시의 도움으로 일순 홈플러스 측에 유리하게 흘러가던 사업은 정작 시유지 매각 입찰에서 의외의 결과가 나오며 반전을 맞았다. 예정부지 내 시유지 1천128㎡ 중 427㎡는 사업주체인 밸류인사이트리테일이 10억3천400만원에 낙찰받았으나 나머지 701㎡는 입점에 반대하는 상인 중 한 명이 11억1천500만원에 우선권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곳은 입점 예정지 한가운데 위치해 부지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마트 입점 계획 자체가 무산될 확률이 높다.

경주시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부지 매각 결과에 미뤄 마트 입점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많지만 아직 명확한 결론이 나온 것은 아니다"면서 "법률에 근거해 하자가 없으면 무조건 거절할 명분이 없다. 우리로서는 양자가 합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밖에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형마트의 최적지인가

경주는 대형마트 체인으로서는 군침을 흘릴 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인구 27만의 도시규모에 비해 대형상권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현재 대형마트는 경주시 용강동에 약 3천㎡ 규모의 홈플러스 1호점이 유일하다.

문화재보호구역이 많은 경주지역 특성상 대형상권이 들어설 만한 건축물 건립이 힘든 탓이다. 지난해 보문단지 내에 대형아울렛과 롯데마트 입점 등이 논의된 적이 있으나 명활산성 등 주변 문화재 보호를 위해 흐지부지됐다.

이 때문에 경주시는 전통시장 및 소규모 상인들에 의해 주로 상권이 유지되고 있고, 천년고도의 특성상 대형마트 같은 편의시설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홈플러스 용강점의 경우, 하루매출 4억원을 올리는 등 전국 홈플러스 내에서도 규모 대비 수익률 10위권 안에 항상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 2012년 11월 부동산업체인 밸류인사이트리테일이 경주시 충효동에 지상 3층, 지하 3층, 연면적 2만3천157㎡ 규모의 홈플러스 건축을 신청하면서 경주지역 상권에 태풍이 불기 시작했다. 계획대로라면 기존 용강동 1호점에 비해 약 6배에 달하는 경주지역 최대 규모의 대형마트가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경주상인보호위원회 심정보 위원장은 "상인이 낙찰받은 홈플러스 예정부지의 매입을 위해 상인들끼리 십시일반 펀드를 구성하는 방안도 생각 중이다. 못 쓰는 땅을 떠안는 고통을 감수하는 것은 그만큼 절박하다는 방증"이라며 "주민들의 편의성을 생각하면 죄송한 마음이지만, 이웃의 선량한 영세상인들을 길거리로 내몰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경주 이채수 기자 cslee@msnet.co.kr 신동우 기자 sdw@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