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울진스럽다'와 '상주답다'

입력 2015-04-03 05:00:00

경상북도청 공무원 두 명과 저녁식사를 함께했을 때 일이다. 술이 몇 순배 돌고 적당히 취기가 오를 즈음 들어온 대게 몇 마리에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게 됐다. 경북 울진이 고향인 A씨가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대게가 가장 많이 잡히는 곳이 바로 울진이라고 했다. 그러자 다른 공무원 B씨가 "그런데 왜 영덕대게가 그렇게 유명하게 됐냐"고 물었다.

A씨가 적당한 답을 찾지 못하고 헤매자 B씨가 열변을 토했다. 얼마 전 지인을 통해 들었다면서 B씨는 '울진스럽다'는 신조어를 소개했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죄다 빼앗기고 남 좋은 일만 시키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고 했다.

B씨에 따르면 경북 울진이 그렇다는 것이다. 대게는 사실 울진 인근 바다에서 많이 서식하는데, 영덕 배가 잡으면 영덕대게가, 포항 배가 잡으면 구룡포대게가 되는 식이다. 결국 영덕대게이건, 구룡포대게이건, 대게의 원고향은 울진인 것.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대게=영덕'으로 떠올리는 것은 영덕이 대게에 대한 브랜드를 선점한 효과 때문이란다.

울진이 다른 지역에 넘겨준 보물은 대게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국보 1호인 숭례문 복원에 쓰인 금강송도 그렇다. 금강송의 고향도 울진이다. 울진 서면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는 우리 전통 소나무의 원형을 가장 완전하게 보전하고 있는 소나무 원시림이다. 그러나 금강송도 많은 사람들에게 울진보다 춘양이 더 익숙하다. 과거 울진, 봉화, 영양 등에서 생산된 목재를 영동선의 '춘양역'을 통해 전국으로 운반되는 바람에 '춘양목'으로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게 됐기 때문이다.

송이버섯과 은어도 옆 동네가 10여 년 동안 사용하고 있는 울진 대표 특산품이다. 올해 19회째와 17회째를 각각 맞는 봉화송이축제와 봉화은어축제는 이미 봉화의 대표적인 지역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매년 여름엔 은어를 잡기 위해 봉화 내성천으로 사람들이 몰리고, 가을엔 송이버섯을 맛보기 위해 봉화의 송이산 일대가 북적북적할 정도다. B씨는 "송이버섯 생산량은 울진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다. 특히 은어는 맑은 물을 좋아해 어릴 때 바다로 나갔다가 다시 하천으로 돌아오는 바다빙어과의 민물고기다. 바다가 없는 봉화에서 은어축제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느냐"고 했다.

얼굴이 상기된 A씨가 반격을 시작했다. 그는 "'상주답다'는 말이 요즘 회자하는데, 공부는 정말 열심히 하는데 항상 본시험만 보면 2등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면서 경북 상주가 고향인 B씨를 지목했다.

상주의 '2등 징크스'는 올해로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05년 12월 한국도로공사 등 공공기관이 들어설 경북지역 혁신도시 경쟁에서 김천에 밀려 2위에 그친 것이 2등 징크스의 시작이었다. 당시 상주는 혁신도시 유치에 온 힘을 쏟았지만 간발의 차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지 못했다.

2008년 경북도청 이전 예정지 경쟁에서도 상주는 막판 안동'예천의 공세에 막혀 아깝게 2위에 머물렀다. 삼세판이었던 2009년 한국마사회의 제4경마장 유치전은 상주가 자신 있었다. 당시 상주는 경북대 상주캠퍼스에 말산업연구원을 설립하고, 지역의 용운고는 마필관리과를 신설하는 등 말산업 기반여건 조성에 힘을 쏟았다. 하지만 결과는 영천에 밀린 2등 성적표를 받았다. 다음 해에는 더욱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자전거박물관이 있는 등 전국에서도 자전거 도시로 유명한 상주가 2010년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전국 자전거 거점도시에서 구미에 밀려 유치에 탈락한 것이다.

두 공무원의 얘기는 결국엔 고향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나온 듯싶다. 또 그 이면에는 을미년 2015년부터는 두 도시의 명운이 바뀌기를 기대하는 소망도 곁들어 있을 터이다. 올해부터는 '울진스럽다' '상주답다'가 아닌 '울진처럼 되자' '상주만큼 하자'는 말이 회자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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