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전망] 비자금 사건을 고백한다

입력 2015-04-01 05:00:00

송구한 마음으로 때늦은 고백을 하겠다. 지난해 9월 초에 일어난 일이다. 안면이 있는 포스코건설 고위 임원이 황급히 필자를 찾아왔다. 당시 본지는 포스코건설 비자금 관련 제보를 받고 확인 중이었기에 그 임원의 방문 목적이 무엇인지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본지에 들어온 제보 내용은 간단했다. '포스코건설 베트남 현지법인이 비자금 100억원가량을 조성해 공사 수주 로비 등에 썼고, 이 때문에 전'현직 법인장인 상무 2명이 감사팀에 적발돼 대기발령 상태에 있다.' 현재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하고 있는, 바로 그 내용이다.

그 고위임원은 "징계받은 상무 2명은 공사 수주를 위해 비자금을 만들었기에 오히려 억울하다"며 기사를 유보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필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그 임원은 '국익'(國益) 논리를 들이댔다. 기사가 나갈 경우 포스코건설이 향후 동남아에서의 공사 수주는 불가능해지고, 결국에는 (비자금을 조성한) 베트남 발주처를 추궁할 수밖에 없어 외교 마찰까지 빚게 될 것이라고 했다. 연간 8천억~1조원에 달하는 베트남의 공사 수주액도 날아갈 것이라고도 했다. 드라마 '미생'에서 중국 회사와의 관시(關係'연줄)를 위해 비자금을 조성했다가 최전무(이경영 분)가 물러난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그 기사로 사회면을 시원하게 장식할 것인지, 아니면 국익을 위해 유보하는 것이 맞을지 고심이 컸다. 그 임원이 광고나 협찬을 제안했으면 끝까지 보도했겠지만, 국익 논리로 접근하는 데에는 도리가 없었다. 당시의 좁은 소견으로는 기사 하나를 쓰기 위해 포스코건설에 막대한 손해를 입힐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담당 기자와 상의한 뒤 기사화를 포기했다. 최근 이 사건으로 포스코건설이 압수수색 당하고 관계자들이 줄줄이 소환되고 있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과연 그때의 판단이 옳았는가'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임원의 해명 중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것이었다. 현재 검찰 안팎에서 들리는 내용 가운데 비자금 중 일부가 국내로 유입됐다는 사실은 당시에는 전혀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연유가 어찌됐든, 기사화를 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독자 여러분들에게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때늦은 고백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만은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자기다짐을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인 것은 분명하다.

포스코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수사 대상이 된 정준양 전 회장이 재임 시절 내세웠던 '윤리경영'의 허구성 여부가 또 다른 논란거리다. 정 전 회장은 '윤리경영'을 단순한 구호나 강령으로 여기지 않고, 여기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했다. 감사팀을 앞세워 본사와 계열사 직원들의 일상을 감찰했다. 당시의 감사팀은 과거의 '중앙정보부'를 연상시킬 만큼 위세가 대단했고 '슈퍼갑'이나 다름없었다.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지 않겠지만, 직원들을 지나칠 정도로 몰아붙이는 일이 잦았다. 그렇지만 정 전 회장이 물러난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베트남 비자금사건이 새어나왔다.

향후 검찰 수사과정에서 관련 여부가 밝혀지겠지만, 본인 스스로에게는 관용을 베풀고 직원들에게만 강요했다고 하면 이건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사표를 쓰거나 불이익을 당한 직원이 부지기수다. 정 전 회장이 검찰 수사에서 깨끗함을 증명하지 못할 경우 어떻게 될 것인가. 포스코는 도덕적 혼돈에 휩싸일 것이고, 그가 이끈 포스코의 5년간은 정당성을 부여받기 힘들 것이다. 이제 정 전 회장의 흔적을 걷어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포스코는 예전과 같은 영광을 되찾아야 한다. 당연히 그래야 하고, 그렇게 될 것이다. 포스코 자체의 뼈를 깎는 자기쇄신과 반성이 전제돼야 함은 물론이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