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발연기

입력 2015-03-30 05:00:00

우리말에는 신체 부위를 나타내는 말을 결합해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으로는 직접 연결되는 신체 부위를 결합하는 방법이다. 이런 것의 예로는 '팔씨름, 발야구'와 같은 말을 들 수 있다. 팔씨름이나 발야구는 씨름이나 야구와는 엄연히 다른 경기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경기를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내는 것은 사람들에게 잘 인식이 되지 않고, 비효율적인 일이다. 그래서 기존에 있던 말에 팔이나 발을 주로 사용한다는 의미를 덧붙여서 말을 만들어 낸 것이다. '디딜방아'라는 말 대신 일부 지역에서 사용하는 '발방아'라는 말 역시 발을 주로 사용하는 방아라는 뜻으로 같은 원리로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물을 표현할 때 좀 더 쉽게 표현하기 위해 신체 부위에 비유하는 경우도 있다. '바늘귀, 그물코, 상다리'와 같은 말이 이러한 원리로 만들어진 것인데, 이 말들을 들으면 직관적으로 어떤 모양인지, 어떤 부위를 설명하는 것인지 알 수 있다. 이런 종류의 말들은 대개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번역을 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그런데 비유적으로 사용된 말에 신체 부위를 나타내는 말을 붙이는 경우는 우리말 사용자가 아니라면 알기 힘들고 번역을 하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앞서 이야기한 말들과는 달리 결합하는 신체 부위와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입방아'의 경우는 입으로 찧는 방아가 아니라 '어떤 사실을 화제로 삼아 이러쿵저러쿵 쓸데없이 입을 놀리는 일'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눈도장'을 찍었다고 하면 암묵적으로 허락을 얻거나 상대편의 눈에 띄어 인상을 남기는 일을 이야기한다. '눈요기'라는 말도 분석해 보면 흥미가 있다. '요기'는 무엇을 간단하게 먹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아무리 간단한 음식이라 하더라도 눈으로 먹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요기라는 말과 관련 없는 신체 부위인 눈이 합쳐져서 '눈으로 보기만 하면서 어느 정도 만족을 느끼는 일'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는 '방아, 도장, 요기'와 같은 말이 원래의 말에서 확장되어 비유적으로 쓰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표준어는 아니지만 최근에는 신체 부위를 나타내는 말이 접두사처럼 쓰이면서 다양한 말을 만들어 내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말로는 못할 것이 없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입'을 붙여 말을 만들기도 한다. 지금은 5등급이지만 한 달 안에 1등급을 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입공부'만 하는 학생들이다. 말하는 것만 보면 허구연 씨를 능가하는 해설자고, 방망이만 잡으면 당장 프로야구 판에 갖다 놓아도 이승엽 선수와 경쟁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에게는 '입야구'를 한다고 하기도 한다.

입과 더불어 접두사처럼 사용되는 신체 부위는 '발'이다. 발은 손과 달리 정교하지 못하기 때문에 매우 미숙하고 서툰 것에는 발을 붙여서 사용한다. 그림을 발로 그린 것처럼 너무 못 그렸을 때 '발그림'이라고 한다. 책을 읽는 듯한 대사, 어색한 동작, 뜬금없는 감정의 과잉 등으로 도저히 극에 몰입할 수 없게 만드는 미숙한 연기를 말할 때 '발연기'라고 한다.(아이돌 가수 출신인 장수원 씨는 무표정, 변화가 없는 어조, 어색한 시선 처리와 동작 등이 결합된 궁극의 발연기를 선보여 희극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기도 했다.) 그런데 만약 발연기를 영어로 번역을 하면 어떻게 될까? 발은 영어의 'foot'과 대응이 되지만 우리처럼 발이 미숙하다는 의미의 접두사처럼 쓰는 경우에는 그대로 번역할 수는 없다. 영어에도 신체 부위를 이용하여 미숙함을 표현하는 말이 있는데 'all thumbs'(다섯 손가락이 모두 엄지)이라든가 'two left hands'(왼손만 있는)와 같은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엄지라고 하면 '최고'라는 의미를 먼저 생각하는데, 같은 것에서 서툴다는 것을 생각하는 문화적 차이가 흥미롭다.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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